이해찬이 밀어붙인 위례, 이건춘이 뜯어말린 판교
옛 국정홍보처가 발행한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을 보면 위례신도시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였다.
문제는 군부대가 다수 포함된 입지였다는 점이다. 제안자인 이 전 총리는 직접 군 당국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최종 입지로 확정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대 이전 문제는 두고두고 위례신도시 개발의 발목을 잡아 공급 시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6년 4월 주거복지정책 토론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택공사 사장님한테 내가 화끈하게 밀어드리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 않느냐. 돈 빌려다 쓰면 정부가 뒷감당해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주택 공급 확대에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당시 이건춘 건교부장관이 “용인 수지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데다 판교까지 개발되면 분당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지역의 교통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더 이상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판교 택지 개발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그러다 이듬해 토지공사 사장 출신 김윤기 장관이 새로 부임하자 재시동이 걸린다. 그는 취임 직후 판교 개발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되 교통과 환경, 수도권 집중 문제 등을 감안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관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널뛰기를 한 셈이다.
그 다음에는 경기도가 수도권 남부 교통난과 베드타운화를 이유로 들어 반대했고 환경단체들도 가세했다. 주민들 역시 찬반 양론으로 나뉘었다. 2001년 5월에서야 정부와 여당이 판교를 ‘저밀도 전원도시’로 개발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판교가 파격적인 녹지율과 기존 신도시 인구밀도의 절반 수준으로 개발된 데에는 이같은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분양이 예정된 2005년이 됐으나 그 해 초부터 판교가 주변 집값 급등의 요인이 되자 분양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분양 일정 전면 중단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8·31 부동산 정책 마련의 배경이 됐으며 판교 분양은 이듬해 3월과 8월로 연기돼서야 시행될 수 있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