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홍명보를 감싸려 한 허정무의 태도는 잘못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홍명보는 우리 축구가 쉽게 폐기해도 좋을 수준의 재능은 아니다. 2015년 9월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홍명보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지 모를.
홍명보의 발탁은 너무 일렀다. 우리 축구는 선수로서 순조롭게 재능을 꽃피우고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그가 지도자로서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홍명보의 야망은 별개의 문제고, 젊은 가슴에 야망을 품었다고 해서 나무랄 수 없다. 어찌됐든 내가 보기에 홍명보는 국내에서 생산된 지도자 재목 중에 비교할 대상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다.
태릉에서 홍명보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김상식이 재담을 할 때 홍명보가 밝고도 맑게 웃었는데, 표정이 참 예뻤다. 그 웃음을 2002년 한ㆍ일월드컵 때 다시 보았다. 홍명보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뒤 그렇게 웃었다. 런던에서 올림픽 동메달을 따내고 기뻐하던 표정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내 가슴에 남은 앞의 두 표정과는 종류가 달랐다.
홍명보는 고려대에 다닐 때 이미 스타였다. 그런데 기자들은 그가 편하게 인터뷰하기 어려운 선수라고 했다. 그와 대학 동기라는 후배 기자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명보가 그러더라고요. '기자들이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선수의 이름을 쓸 때, 나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축구선수 홍명보(이번에도 나는 이렇게 쓴다)를 떠올리곤 한다. 신문을 보라. 사회면에 범죄자의 이름을 쓸 때도 직함이나 최소한 '-씨'를 붙인다. 그런데 왜 운동선수만 알몸이름을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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