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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신경숙 표절 부인…두 작품 전체 대조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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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출판사 창비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이 제기된 지 두 달여만에 “유사성이 발견되나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슷하지만 베껴쓰지는 않았다’는 창비의 자체 판단을 독자와 문단에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신경숙. 사진=SBS '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

신경숙. 사진=SBS '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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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신경숙 단편 ‘전설’의 표절 의혹을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설’과 ‘우국’의 유사점은 산발적으로 지적됐다. 근거로 제시된 부분을 한 자리에 모아서 보면 표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전설’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우국’과 문단과 문장, 모티브와 줄거리, 구성이 비슷하다고 지적됐다. ‘전설’은 창비가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낸 신경숙 중단편집에 수록됐다.

▲ 문단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저, 김후란 번역, ‘금각사, 연회는 끝나고, 우국’, 주우 펴냄 )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여기서 신경숙이 베껴썼음을 드러내는 문구가 ‘기쁨을 아는 몸’이다. 이 문구는 위에 인용한 김후란 번역에만 나온다. 다른 번역본 두 종에는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이문열 ‘세계명작산책2’)와 ‘기쁨을 알고’(신우문화사 ‘한창 꽃 핀 숲’)로 각각 옮겨졌다. 이로부터 ‘우국’을 읽은 신경숙이 ‘전설’에 의도하지 않게 그와 비슷한 표현을 쓴 게 아니라 김후란 번역을 표절한 것이라고 합당하게 추정할 수 있다.

▲ 문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가슴에 기쁨이 넘쳐나는 바람에 서로 마주 보는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미시마 유키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내부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쳐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신경숙)

자신의 내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머나먼 깊은 곳에서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격렬한 아픔이 솟구쳐 오르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부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슴 속 깊은 데서 격렬한 아픔 같은 것이 솟구쳐 오르더니 흰 배구공이 튀어 올라와 통통거렸다. (신경숙)

JTBC는 논문 표절 감별 프로그램으로 두 소설을 비교한 결과 위 인용한 대목을 포함해 5곳의 구성이나 표현이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 모티브와 전개
(신경숙의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유사하다. (정문순 문학평론가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

‘우국’에서는 일제 파시즘 시기에 동료들의 친위 쿠데타 모의에서 제외된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 ‘전설’에서는 한국전쟁 때 한 남자가 군대에 자원입대한 뒤 실종된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문학평론가 정씨는 ‘우국’과 ‘전설’은 “남편의 죽움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먼저 언급하는 전개 방식”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창비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부인하는 주장을 최근 간행한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의 권두언에 담았다.

권두언을 쓴 창비의 편집주간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토론을 제의해야 했으나 “단죄하는 분위기”에서 무슨 말을 해도 비난을 키울 수밖에 없어 묵언을 택했다고 해명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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