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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포르노'에 빠진 사회, "왜 우린 '먹방'에 열광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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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올 한해 영상매체에서는 '먹방'(먹는 방송)이 넘쳤다. TV 속 아이들도 먹고, 어른들도 먹고, 다들 식탐을 자랑했다. 세계적인 자살국가 '한국', 양극화와 노인 빈곤, 청년실업, 만혼, 1인가구의 증가 등으로 우울한 현실에서 원초적인 욕구는 더욱 절실했다. 인터넷 채널은 물론 배달 전문 사이트들도 먹방에 편승, 욕망의 해방을 부추겼다.

올해 우리 문화 소비에서 가장 특이한 사례인 '먹방'에 대해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프랑스 언론은 '푸드 포르노'라며 다른 이의 식탐을 관음하는 풍조로 해석하기도 했다. 본래 우리 문화는 다른 사람의 음식 먹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상례다. 1인 가구와 함께 싱글 다이닝이 늘고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 먹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현상은 결국 인간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문화비평가들은 "외로움과 허전함이 주는 결핍이 먹방을 소비하게 한다"며 "1인 가구의 급증과 인간관계의 단절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썸'과 '으리' 역시 문화 소비에 있어 관계 단절과 연관이 있다. 나 스스로 치유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 맺기'를 시도하지만 소통 블안에 허덕인다. 썸문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대는 20∼30대로 대학생이거나 취업 준비생, 사회초년병으로 아직은 사회적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한 부류다. 여전히 불안하고, 늘상 결정장애에 시달리며 자기 감정을 확신할 수 없어 서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논다. 이들은 대체로 SNS상에서의 소통에 더 익숙한 세대다. 그래서 오프라인의 접촉에서는 오히려 주저하고,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 하며, 자기 노출 혹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으리' 소비에 열중한 40∼50대들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가볍고, 유머스럽게 '항아으리', '회오으리'처럼 말장난하며 은연 중 의리 없는 사회를 풍자, 질책하며 노는 풍속도다. 이는 조직에 대한 낮은 충성도와 연대의식, 권력, 돈에 영합해 가는 세상을 패러디한다. 특히 배신과 불신의 풍조, 리더십 부재, 신뢰에 대한 목마름이 반영된 문화다. '으리'라는 상품이 소비된 배경에는 인간 군상의 만화경같은 세태에서 관계맺기의 절박성이 스며 있다. 직장을 잡기 위해 '취업 성형'하는 젊은이,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이어트에 빠진 직장 여성, 실업 위기에 처한 40, 50대 중년들,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노년층 등 각 세대별, 연령별, 계층별 단절의 심화가 썸과 으리, 먹방을 낳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문화시장 주요 키워드로 '썸', '으리', 먹방', '치유', '불륜', '셀카', '미생', '해외 직구', '꽃할배' 등을 꼽는다. 이 키워드들은 별개인 것처럼 보여도 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썸과 으리, 먹방, 치유, 불륜 등은 관계 단절, 소통의 목마름, 욕망의 분출 등을 소비하는 세태를 반영한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앞으로 가면과 가식, 위선에 얽힌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낼 새로운 욕망과 소비, 사회문화적 변화가 크게 부각될 것"이라며 "다양한 일상의 욕구가 돈과 시간, 취미, 가족, 연애, 소비 등의 다양한 면면으로 연결돼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2013년의 경우 우리 문화시장에서는 1990년대를 발화점으로 하는 '복고'와 온갖 상처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힐링' 상품, '성형' 소비가 거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신드롬을 일으킨 것처럼 복고 열풍은 디지털 피로감속에서 향수와 추억을 끌어냈다. 지친 일상에서 자기 위안을 가장한 욕망의 분출로 힐링과 성형도 유행했다.

그렇다고 올해 문화시장에서는 먹방과 썸, 으리만 소비되지는 않았다. 연령대별로 분화하는 현상도 나타나 이채를 띠었다. 과거 사오정, 오륙도 등 다른 연령대라도 실업 위기라는 동질 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분화 양상도 엿보인다.

'6070세대'에서 나타난 '꽃할배'들이다. 이들은 '꽃할배'라고 불리며 왕성한 소비력을 뽐냈다. 또한 신나는 은퇴 이후의 삶을 누리는 풍경을 연출하며 일종의 감염현상을 일으켰다. 이어 '꽃누나', '꽃할매' 등 일과 자녀들에게만 빠져 있던 부류들이 자기 행복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이들을 겨냥한 각종 여행 상품, 패션, 의료. 안티에이징 등 다양한 산업을 자극하고 있다. 내년에는 양의 해다. 내년에도 다른 이들의 식탐에 행복해 할지, 또다른 욕망의 관음이 판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밝고 건강한 사회를 반영한 문화 소비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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