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문화 소비에서 가장 특이한 사례인 '먹방'에 대해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프랑스 언론은 '푸드 포르노'라며 다른 이의 식탐을 관음하는 풍조로 해석하기도 했다. 본래 우리 문화는 다른 사람의 음식 먹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상례다. 1인 가구와 함께 싱글 다이닝이 늘고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 먹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현상은 결국 인간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문화비평가들은 "외로움과 허전함이 주는 결핍이 먹방을 소비하게 한다"며 "1인 가구의 급증과 인간관계의 단절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으리' 소비에 열중한 40∼50대들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가볍고, 유머스럽게 '항아으리', '회오으리'처럼 말장난하며 은연 중 의리 없는 사회를 풍자, 질책하며 노는 풍속도다. 이는 조직에 대한 낮은 충성도와 연대의식, 권력, 돈에 영합해 가는 세상을 패러디한다. 특히 배신과 불신의 풍조, 리더십 부재, 신뢰에 대한 목마름이 반영된 문화다. '으리'라는 상품이 소비된 배경에는 인간 군상의 만화경같은 세태에서 관계맺기의 절박성이 스며 있다. 직장을 잡기 위해 '취업 성형'하는 젊은이,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이어트에 빠진 직장 여성, 실업 위기에 처한 40, 50대 중년들,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노년층 등 각 세대별, 연령별, 계층별 단절의 심화가 썸과 으리, 먹방을 낳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문화시장 주요 키워드로 '썸', '으리', 먹방', '치유', '불륜', '셀카', '미생', '해외 직구', '꽃할배' 등을 꼽는다. 이 키워드들은 별개인 것처럼 보여도 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썸과 으리, 먹방, 치유, 불륜 등은 관계 단절, 소통의 목마름, 욕망의 분출 등을 소비하는 세태를 반영한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앞으로 가면과 가식, 위선에 얽힌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낼 새로운 욕망과 소비, 사회문화적 변화가 크게 부각될 것"이라며 "다양한 일상의 욕구가 돈과 시간, 취미, 가족, 연애, 소비 등의 다양한 면면으로 연결돼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올해 문화시장에서는 먹방과 썸, 으리만 소비되지는 않았다. 연령대별로 분화하는 현상도 나타나 이채를 띠었다. 과거 사오정, 오륙도 등 다른 연령대라도 실업 위기라는 동질 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분화 양상도 엿보인다.
'6070세대'에서 나타난 '꽃할배'들이다. 이들은 '꽃할배'라고 불리며 왕성한 소비력을 뽐냈다. 또한 신나는 은퇴 이후의 삶을 누리는 풍경을 연출하며 일종의 감염현상을 일으켰다. 이어 '꽃누나', '꽃할매' 등 일과 자녀들에게만 빠져 있던 부류들이 자기 행복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이들을 겨냥한 각종 여행 상품, 패션, 의료. 안티에이징 등 다양한 산업을 자극하고 있다. 내년에는 양의 해다. 내년에도 다른 이들의 식탐에 행복해 할지, 또다른 욕망의 관음이 판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밝고 건강한 사회를 반영한 문화 소비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