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찬반 팽팽 재검토서 안전사고이유로 불수용 선회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기업활동에 불필요한 규제는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내용을 근간으로 한 박근혜정부의 규제개혁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엇박자 속에서 '넛크래커' 위기에 빠졌다. '넛크래커'는 호두껍질을 까는 기계로서 한국의 경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사이에 끼어 호두까기 기계 속의 호두와 같은 처지가 됐다는 의미로 쓰인다. 규제개혁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낀 처지를 의미한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5개월 사이 행정부가 새로 만들어낸 규제는 늘어난 반면에 정치권은 규제신설 또는 강화법안을 우후죽순 발의하면서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법안의 처리는 전무(全無)했다.
박 대통령이 '진돗개정신'과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하며 속도를 주문했지만 속도는 더디다.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제기된 손톱밑 가시 92건 가운데 63건이 완료된 반면에 나머지 29건(진행중 25건, 국회법안 심의 3건, 지연 1건)은 답보상태다.
이중 지연 1건은 삼성전자가 2013년 12월에 건의한 복지시설(보일러실, 식당) 내 LNG 방폭규제 완화다. 삼성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공정용이 아닌 복지시설에 해당하는 보일러실, 식당주방에 대해서도 공정용과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개정방향에 대한 찬반의견이 대립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가 지난 5월 한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입장을 또 바꿨다. "안전분야 규제완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크고, 최근 공정용 LNG 사고사례 발생했다"면서 '추진중단 또는 장기검토보고'로 분류했다. 사실상 불수용으로 선회했다. 불필요한 규제는 적극 개선하겠다는 적극행정의 의지가 안전사고 앞에서 소극행정으로 꺾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금융위는 동양사태와 같은 투자자의 피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특정금전신탁의 계약별 최소 가입금액을 5000만원으로 설정하기로 하고 자본시장법을 고치려했다. 그러다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과잉규제라며 철회권고를 받아 결국 이를 철회했다. 규개위는 ▲최소 계약금액 제한의 법률상 위임근거가 불명확하고▲ 투자자보호에 적합한 수단인지 불분명하며 ▲최근 특정금전신탁에 대한 다수 규제가 도입되었거나 시행예정인 상황에서 최소 계약금액을 제한하는 것은 과잉규제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국회의 이중적 잣대도 기업활동과 경제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5월 본회의를 통과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는 여야간 합의로 통과됐지만 내년 시행을 두고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함께 통과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은 불법보조금 근절과 기기및 요금인하 효과라는 측면도 있지만 제조사의 경쟁력약화와 대리점 구조조정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는 5월초 본회의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킨 이후 3개월째 단 1개의 법률안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 투자활성화 대책의 근간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2012년 7월20일 발의된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법은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정책 의지를 표명하는 기본법 성격이지만 의료 민영화 등을 우려하는 이익단체의 반발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역시 2012년 10월9일 발의 이후 679일째 헛바퀴만 돌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정부의 대책 발표가 입법 지연으로 양치기 소년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오는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기로 했던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이유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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