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켜 줄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라고 새누리당 혹은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교황의 짧은 한 마디,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일 것이며, 진심을 알리는 데는 굳이 희생자들을 호명하거나 한 줄기 눈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을 세월호에서 경제활성화로 완전히 전환시켰다. 당장 이번 주에도 많은 경제 관련 일정들을 소화할 것이다.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민생이란 말로 세월호를 덮고 싶어하는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이런 의심은 '가해자'인 국가로부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충분히 위로 받지 못했다고 느끼기에 드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및 구조실패의 원인 그리고 책임소재 규명에 국민들이 집착할수록 현 정부에게 무엇인가 불리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의심도 분명히 존재한다.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시키는 데 집권여당이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라고 많은 사람들은 느낀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이라 탓하기에 앞서, 왜 많은 국민들이 이 같은 비관과 음모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겹게 할 수밖에 없는지,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박 대통령은 광화문 광장으로 가야 한다. 세월호 유족 농성 천막은 청와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대통령의 최대 임무는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단식하는 그들을 내버려 두는가. 15일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로 옆 세종문화회관에도 가지 않았던가. 왜 차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가. 가서 가진 만큼의 진심을 보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런다고 해서 경제의 불씨가 꺼지는 것도 아니고 세월호특별법에 관해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수용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먼 나라에서 온 종교지도자의 두 손에 머리를 묻고 흐느껴야만 했던 우리는 위로 받으면서 동시에 절망한다. 치유되지 못한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시간이 별로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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