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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느림(Slow)과 핵(Nuclear)

최종수정 2014.05.17 15:15 기사입력 2014.05.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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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증가에 따른 혼란·위험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중요

▲엑상프로방스 거리는 먼 옛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엑상프로방스 거리는 먼 옛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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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프랑스)=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느렸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렀다. 프랑스 남부 지역인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세잔(Paul Cezanne)의 마을이다. 세잔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가 커피를 마시던 카페도 아직 그대로 있다. 거리에는 수 백 년이 넘은 건물들이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들의 조상이 걸었을 '그대로의 거리'를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카다라쉬(Cadarache).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이곳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건설 중이다. ITER은 2006년 중국, 유럽, 인도,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 등이 서명한 이후 2007년 사무처가 조직됐다. 카다라쉬에서 ITER 건설이 시작됐다. 2055년 상업적 핵융합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일정을 내놓았다. ITER 건설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약 130억 유로(약 18조3000억)이다.
태양과 같은 별의 중심은 1억 도가 넘는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이다. 이때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데 이 때 핵융합반응이 나타나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 에너지를 미래 에너지원으로 개발하겠다는 국제 과학 프로젝트가 ITER이다.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ITER는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그만큼 위험성이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을 다루다 보니 위험은 늘 존재한다.

프랑스에 이런 국제핵융합실험로가 건설되는 배경에는 1959년 프랑스가 이곳에 원자력청 연구센터를 만들고 기본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 외에 또 하나의 이유를 찾는다면 바로 '느림(Slow)'에 있지 않을까.
21세기는 모든 것이 빠르다. 인터넷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4세대를 지나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보니 인류는 원자력발전소를 앞 다퉈 지었다. 무지 빠르게.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에너지는 쉽게 얻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끔찍한 비극을 초래한다. 자칫 잘못 사용하면 인류를 파괴하는 곳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에너지가 증가하면 그만큼 위험도 같이 증가하는 셈이다. 에너지증가의 법칙은 그래서 혼란증가의 법칙과 꼭 빼닮았다.

▲엑상프로방스 광장에서 느림의 '1인 연극'을 하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

▲엑상프로방스 광장에서 느림의 '1인 연극'을 하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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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는 전체적으로 '느림의 문화'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엑상프로방스의 한 슈퍼마켓에 들렀다. 저녁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치즈와 와인을 산 뒤 계산을 위해 나도 그들 뒤에 섰다. 내 앞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 분이었다. 마침내 그 노인분이 계산할 순간이 왔다. 계산원이 물품을 모두 체크하고 가격을 말하자 그때서야 노인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하나하나씩 정성스럽게 내어놓으면서 계산을 했다. 지갑을 열고 계산하는 데 까지 약 2분 정도는 걸린 듯하다. 뒤에 줄을 서 있는 그 누구도 "좀 빨리 계산 합시다"라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조금은 조바심이 났을 뿐이다. 뭔 계산을 저렇게 오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외에 엑상프로방스 사람들은 물론이고 계산원도 할아버지가 천천히 계산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기다릴 뿐이었다.

엑상프로방스의 중심 광장. 저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중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거리의 예술가들이다. 한 예술가는 하얀색 옷을 통째로 입고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언뜻 보면 하얀 동상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의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팬터마임이었다. 천천히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의 움직임으로 몇 시간 동안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물론 그의 앞에는 동전을 넣을 수 있는 통이 놓여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왔을 때도 그는 꼼짝하지 않고 그곳에 서 있었다. 1유로를 그의 통에 넣어 주었다.

엑상프로방스 거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수백 년이 넘은 세월의 깊이를 담고 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21세기에 이곳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멈춰있는 듯 여유와 느림이 존재했다. 이런 곳에 국제핵융합실험로가 건설되는 것은 다행이다 싶었다. 에너지는 필요한데 그에 앞서 느림의 문화가 안전을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다.

인류는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빠르게 무조건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라 인류의 안전은 물론 여유로운 에너지원 개발로 지구촌이 움직일 때이다. 에너지는 꼭 필요하지만 그만큼 혼란과 위험성도 같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원에는 위험과 혼란이 동시에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제어하고 차단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느림의 문화로 접근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융합실험로가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중이다.

▲핵융합실험로가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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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프랑스)=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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