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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서럽다는 말(31)

최종수정 2020.02.12 10:27 기사입력 2014.05.0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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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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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는 말만큼 이 땅의 깊이있는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외롭다는 말과 슬프다는 말은 자기 중심적인 말이지만, 서럽다는 말은 철저히 '관계의 정서'이다. 남이 없다면 서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 서럽다는 말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받고 싶은 절실함의 극치이다. 사랑이란 사실, 늘 서럽기 짝이 없다. 사랑받기도 어렵고,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사랑은 헌신만 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우스개가 딱 맞는지도 모른다.

서러움이란 말을 생각하면 울먹울먹하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섧다'라는 말에는 못난이의 그것처럼 여덟 팔자로 그려진 눈썹이 생각난다. 울고싶은 마음, 나 혼자서는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저 사람의 무심, 스스로 쥐어박고싶은 나의 무기력. 내가 울면 저 사람의 동정심이 동할까. 그래서 울어보지만 그러면 상황은 더 악화되기 일쑤이다. 서러움은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러면 더 나빠질까봐 애써 참고 참는 태도이다. 그걸 통찰한 건, 고려가요 '가시리'였다. '잡서와 두어리마라난 션하면 아니올셰라'가 이 겨레의 오래된 서러운 표정이다. 잡고싶지만 그러다가 저쪽 마음이 서운해지기라도 하면 영 안 올 것 같다. 그래서, 서럽지만 님을 보낸다.
'션하다'는 '서운하다'이다. '서운하다'와 '서럽다'는 감정의 농도 차이다. '서운하다'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애써 외면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 얼굴에 벌써 새초롬한 기색이 나타난다. '서럽다'는 그 서운함을 억누르지 못한 '오버'의 상태이다. '서럽다'에는 눈물이 묻어있다. 훌쩍이는 콧물도 묻어있다. 또 서운함과 서러움은 질감의 차이이거나 습도의 차이다. 서운함보다 서러움은 더 축축하고 질척하다. 옛사람들은 서운함으로 감정을 아꼈지만, 그 뒤로 갈 수록 그걸 주체하지 못해 외부로 남세스러운 액체를 서럽게 흘렸다.

서러운 일은, 어디까지나 자기 혼자서 해결하는 문제이다. 관계에서 비롯되었지만 스스로 삼켜야 하는 문제이다. 삼키지 못하더라도 혼자서 울어버려야할 문제이다. 우린 왜 관계를 정상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늘 자해함으로써 마음에 멍울을 남기는 것일까. 그건 상대방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다. 이건 남존여비의 슬픈 그림자이기도 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로 헤아리며 애끓이는 사량(思量)의 원천이기도 하다. 내 사랑이 님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는데, 혹여 님을 부담스럽게 하고 거추장스럽게 하고 힘들게 할까봐 고민하고 괴로워한 흔적이다.

서러움이란 사실, 미운 감정이 뒤바뀌어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얄미워 죽겠는데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그저 나만 괴롭히며 서럽다. 내가 그를 깊이 헤어려 서럽듯 그 또한 나를 헤아려 내 서러움을 달래줬으면 좋겠는데, 늘 저쪽은 태무심이다. 서러움은 푸른 하늘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처럼 서럽고 깊은 봄날에 무덤 뒤에 피는 할미꽃처럼 서럽다. 그러나, 사랑을 계량할 수 있다면, 저 미국과 유럽의 거리낌없는 애욕의 진량보다, 이불 속에서 훌쩍이며 저홀로 쌓는 사랑의 진량이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이 땅이 지닌 이 서러움의 에너지야 말로, 100% 노출로 승부거는 저 양귀(洋鬼)들을 능가하는 저력임을, 당신을 생각하며 괜히 자부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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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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