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이르다. 성금 모금을,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깊이 절망해야 한다. 지금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슴을 치며 더 목 놓아 울어야 할 때다. 지금 섣부르게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희망이란 이름의 거짓 희망이며, 절망으로부터 너무 일찍 탈출하려는, 그럼으로써 진정한 희망을 가로막는 희망의 적이다.
그 호곡(號哭)과 비탄과 끔찍한 기억의 고통 속에 적나라한 우리 자신의 맨 얼굴과 직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니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낸 보기 드문 성공사례니 따위의 환상과 착각과 자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며 거기에서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진상과 실체를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새로 출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성급한 성금 모금으로 지금 우리 자신을 쉽게 위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온 국민 성금 모금 식의 운동의 또 하나의 함정, 그것은 '책임과 권한의 사유화, 반성과 속죄의 사회화'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세월호 참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통절한 자기반성과 참회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비극에 대한 '내 탓이오'의 반성, 누구도 그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내 탓이오가 누구보다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이들, 자기 가슴을 망치로 내려치며 뉘우쳐야 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후안무치한 이들로 하여금 내 탓이오의 순수한 마음과 온정 뒤편에 숨어서 남몰래 웃음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온갖 기괴하고 저급한 행태들을 보여주는 그 주변 사람들과 함께 국가개조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재난이고 참사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구폐(舊弊)보다 그 자신들에 의한 신폐(新弊)가 '적폐(積弊)'의 핵심이 아닌지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세월'이란 망각의 늪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는 것보다 세월호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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