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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제7경은 '如人如山'(72)

최종수정 2014.05.10 10:19 기사입력 2014.04.2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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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72)

[千日野話]단양 제7경은 '如人如山'(72)

공서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신선은 그저 기이한 별종(別種)으로만 치부되어,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해왔던 그들의 위상을 좁혀버렸지요. 하늘을 우러르는 와룡곡의 기운은, 젊은 화랑들이 천지를 뛰놀고 진정한 도를 향해 질문하고 나아가던 신국(神國ㆍ신라)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화랑정신은 바로 신선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와룡곡을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인여산(如人如山), 사람과 산이 만나니 이것이 신선이다."

퇴계가 말했다. "과연 선암의 맨 윗길을 칭할만한 표현입니다. 단군사상과 화랑정신까지 꿰뚫어 칭명하였으니 소박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입니다. 선(仙)자를 파자(人+山)하여 의미를 돋을새겼으니, 이곳이 선암 중의 선암이라 할만합니다. 이리하여 단양의 일곱 경치에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1경은 사암풍병(舍巖楓屛ㆍ사인암), 제2경은 구로모담(龜老慕潭ㆍ구담), 제3경은 삼도일하(三島一霞ㆍ도담삼봉), 제4경은 석미신월(石眉新月ㆍ석문), 제5경은 취암무천(醉巖舞天ㆍ선암)입니다. 제6경은 겸산공수(謙山恭水ㆍ쌍룡곡), 제7경은 여인여산(如人如山ㆍ와룡곡)입니다. 이제 하나가 남았습니다. 전체를 다시 돌아보면 단양은 2담4석1문(二潭四石一門ㆍ도담과 구담, 사인과 선암과 쌍룡과 와룡, 석문)의 풍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강선대(降仙臺)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강선대요?"
이지함이 놀라듯 물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7경은 많은 이들이 이미 손꼽아 온 절경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강선대는 단양을 내세울 대표 승경(勝景)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조금 모자라는 듯했기 때문이다. 강선대는 단양 적성면 성곡리 남한강 기슭에 있는 큰 바위다. 높이가 50척(15m)이 넘는 층층대(層層臺)로 위는 평평하여 사람 100인이 앉아도 여유가 있는 평상(平床)바위다. 퇴계는 말했다.
"단양7경은 모두 아름답기는 하나 조선 땅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강선대는 돌내기여울(石柱灘) 옆에 우뚝 서 있는 이호대(二皓臺)와 마주하고 있어, 오래 바라보기가 좋습니다. 이호대는 신재(愼齋ㆍ주세붕) 선생이 4년 전에(1544년) 그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이호대요?"
공서가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퇴계는 말을 이었다. "신재 선생은 오십이었는데도 수염과 머리가 희었고 함께 갔던 군수 정신환(鄭信還) 또한 60대로 똑같이 허연지라, 두 호호백발이란 의미로 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호대가 풍기의 백운동서원과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가리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운동서원은 주세붕 선생이 이 땅의 유학의 선구자인 안유(원래 안향(安珦)이나 문종임금과 이름이 똑같아 이를 피하여 조선시대에는 초명(初名)인 유(裕)를 썼다)의 고장에 세운 조선 최초의 서원입니다. 이 이름은 또한 주자가 여산(廬山) 아래에 세운 중국 최초의 서원인 백록동서원을 사모하여 지은 것입니다. 백운(白雲)동과 백록(白鹿)동의 두 가지 흰 것이 바로 이호(二皓)입니다. 주세붕 선생은 이호대에서 이 땅의 유학이 가야 할 길을 숙고하였을 것입니다. 강선대에서는 거친 물길을 견디며 우뚝 서 있는 이호대를 바라보기 좋습니다.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지킬 것과 세울 것을 말해주는 기이한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바위는 넓고 높아 전망이 좋고 앉을 자리가 넉넉하니 자연이 만들어준 천혜의 강당(講堂)입니다. 조선의 쟁쟁한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배움을 나누고 난상토론을 벌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지번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사또의 뜻은 높고도 깊습니다."
"그저 둔한 생각일 뿐입니다."
이때 공서가 말했다.
"강선대의 제명(題名)은 단양에 강림한 선녀라 할 만한 두향이 맡는 것이 옳겠군요. 어린 시절부터 이곳을 드나들며 마음을 닦았다 하니, 그로서는 고향이며 요람 같은 곳이 아닐까 합니다."
퇴계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자 두향이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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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 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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