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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제5경은 '취암무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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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68)

[千日野話]단양 제5경은 '취암무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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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주(程朱ㆍ정자와 주자)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다른 무엇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눌인(訥人)이올시다. 또한 선비가 유가를 넘어서서 사방을 기웃거린다는 말이 어찌 찬사이겠습니까. 허허."

퇴계의 말에 토정이 당황한 듯 말을 멈췄다. 그때 명월이 나섰다.

"명경지수에 제 몸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느적거리는 형상을 보니 가히 선무(仙舞)를 춘 듯 어질어질하옵니다. 감히 여쭙건대 소녀를 위해 술을 한 잔씩 돌리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좌중이 모두 박수를 치고는 선주(仙酒)를 한 순배 나눴다. 몇 차례 흥겨운 술잔이 돌고 난 뒤 다시 토정이 일어나 말했다.

"저는 이 선암의 절경을 가히 한마디로 말할 재주가 없는 듯합니다. 다만 취했으니 감히 호기를 부려 이렇게 지을까 합니다. 취암무천(醉巖舞天). 취한 바위에서 하늘이 춤을 춘다. 밝달의 춤과 퇴계 사또의 감천(鑑天)을 새겨넣었습니다."

"오오오."

모두의 탄성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명월이 말했다.

"취한 바위는 바로 선(仙)이요, 춤추는 하늘은 바로 신(神)이니, 그 둘을 합치면 신선이 노니는 선암이 되는구료. 이토록 광활하고 정밀한 네 글자는 다시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퇴계도 말했다.

"취(醉) 한 글자가, 풍경의 답답한 낱말들을 뛰어넘어 선암 전체를 뒤흔들어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선암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있다. 선암에는 서애 유성룡의 정자가 있었다. 사뭇 개울과 산의 경치가 아름다워 그 일대에서 최고의 뷰를 지닌 곳이었다. 가난했던 유성룡이 어떻게 이 정자를 살 수 있었을까. 임금이 그의 공로를 치하해 내린 표범 가죽을 팔아 이곳의 땅을 샀고 거기에 두 칸 집을 지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이후 당쟁으로 영의정 유성룡이 내몰렸을 때 북인으로 탄핵을 주도했던 남이공(南以恭)은 1598년 선암 정자를 문제 삼았다. 남이공은 유성룡의 정자를 중국의 동탁이 쌓은 미오(?塢)와 같다고 비난했다. 미오는 산시성 미현의 북쪽에 산처럼 쌓은 언덕이다. 유성룡은 "예전에 송강 정철을 탄핵할 때에도 뇌물을 탐했다고 무고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송강보다도 처신이 부족했단 말인가"하고 탄식하면서 "붉은 벼랑과 푸른 석벽도 저들의 탄핵 대상에 모두 들어있다"고 일갈했다. 이런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암의 서애 정자는 헐려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미오 논쟁이 있을 때 남이공이 유성룡을 때리면서 엄호한 사람은 자기 당파의 이경전(1567~1644)이었다. 이경전이 누구인가. 지금 단양팔경의 네이밍에 참여한 열 살 소년 이산해의 아들이며 이지번의 손자이다. 이렇게 세상일은 얽히고설킨 채 돌고 돈다. 여하튼 다시 일행 속으로 합류해보자. 퇴계의 말이 계속된다.

"자, 이렇게 하여 5경이 모두 지어졌습니다. 제1경은 사암풍병(舍巖楓屛), 제2경은 구로모담(龜老慕潭), 제3경은 삼도일하(三島一霞), 제4경은 석미신월(石眉新月), 제5경은 취암무천(醉巖舞天)입니다. 제6경은 쌍룡계곡(지금의 중선암 일대)으로 가겠습니다. 바위계곡의 소(沼)에서 두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쌍룡폭포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쌍룡계곡은 단성면 기산리 일대로 옥염대, 명경대 같은 평평한 흰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푸른색 물과 백석(白石)이 어울려 가히 잊지 못할 정경을 뿜어낸다. 바위에 좌정하고 앉아 눈을 감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 치유가 가능한 절승(絶勝)이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퇴계 시절에는 없던 것으로 1717년(숙종 43년) 관찰사 윤헌주(1661~1729)가 새겼다. 강과 산 경치는 단양, 영춘(도담이 있는 곳), 제천, 청풍이 으뜸이고 바위 경치는 3개의 선암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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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신숙주와 기생 차군의 사랑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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