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펼쳐볼 것인가.하지만 그 경우/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오래된 서적' 중 일부)
광명시는 오는 3월6일 기형도 시인 25주기(3월7일)를 맞아 기형도 문학관 건립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형도 문학관은 광명역세권 내에 자리한 기형도 문화공원(2015년 개장 예정)에 세워지며 현재 실시설계 등을 진행중이다. 오는 2017년 개관한다.
발표 자리는 '문학과지성사'가 같은 날 오후 7시30분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500석 규모)에서 '기형도 시인 25주기 추모의 밤' 행사에서다. 문학과지성사는 1999년 기형도 시인 사망 10주기에 맞춰 유고시집 '입속 의 검은 잎',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 수록된 '안개', '오후 4시의 희망' 등 77편의 시와 새로 찾아낸 미 발표시 20편, 소설 8편, 산문 4편을 실은 전집을 발행한 바 있다.
이어 소리꾼 장사익씨가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며 뮤지컬 가수인 배해선씨도 노래 손님으로 나온다. 연극무대에는 낭독극 형태로 시 '위험한 가계-1969'가 펼쳐지며 기형도 시를 주제로 한 영상과 현대무용, 음악 연주공연도 진행된다. 이 자리에서는 광명시의 기형도문학관 건립계획 발표도 이뤄진다.
기형도 시인이 사후 '광명의 시인'으로 불리는 까닭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광명시는 경기 옹진군 연평도에서 태어난 시인이 다섯 살 되던 해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 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당시 광명은 산업화의 물결로 이농자와 도시 철거민이 몰려 들어 우울한 풍경을 연출했다. 시인이 고백했 듯, 등단작인 '안개'의 배경은 바로 광명이다.
그의 시 속 '광명'이란 배경은 언제나 암울하다. 또한 짧은 생애만큼 강렬하면서도 '검은' 색깔로 뒤덮여 있다. '안개'의 도시' 70, 80년대의 광명에는 나날이 공장들이 들어서고 수많은 굴뚝들이 희뿌연한 연기를 토했다. 시인은 폐수 냄새가 역겨운 하천 뚝방에서 여공들이 겁탈 당하고 노숙자가 얼어죽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 충격을 줬다.
산업화 사회의 몸 서리쳐지는 살풍경에 던져진 시인의 시선은 어느 한 구석도 분노도 슬픔도 진저리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런 기형도의 시에 대해 고(故) 김현(평론가)은 "현실을 철저히 부정적이고 고통 어린 시각으로 들여다 보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평가한 적 있다.
낯설고 우울한 풍경, 죽음과 연결된 이미지는 군사독재·산업화라는 시대와 유년의 체험이 결합해 이뤄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 담담한 어조는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고발'이라는 장치로 이해하는 평론가도 있다. 기형도의 시대가 낳은 '가난·상실·우울'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양극화·갈등·분노'로 이어져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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