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시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마리오아웃렛에서 만난 한 의류매장 직원은 "불황이라 손님이 없어 큰 폭의 세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좀체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이렇게 장사가 안되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같은 날 동대문 쇼핑몰 한 매장 직원은 "매장에 제품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지갑을 열고 계산대로 오르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이월상품이나 곳곳에 실밥이 올라있고 구김이 가있어 파격가에 판매하는 매장 밖 '하자제품코너'에만 고객이 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한 상인도 "주고객들인 식당까지 장사가 안되다보니 10만원어치 사갈 찬거리를 지금은 절반만 사갖고 간다"며 "경기가 좋아야 다같이 장사가 잘될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서수진(가명ㆍ37ㆍ여)씨는 "왠만하면 줄이지 않았던 아이들 간식꺼리도 조금씩 사고 있다"며 "예전에는 유기농 재료로 만든 과자를 사곤했는데 요즘은 직접 만들어서 줄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잘 안타는 소주나 맥주 등도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하는 맥주시장의 1∼4월 출고량은 5218만상자(상자당 20병)로 지난해 같은 기간(5407만상자)보다 3.49% 줄었다. 특히 경기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위스키는 상반기 국내 판매량이 105만9916상자(1상자 500㎖*18병)로 전년동기 117만8667상자보다 10.1% 감소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백화점들도 내수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상 최대인 30일간의 여름 정기 세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파격적인 할인혜택과 세일기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것.
대형 백화점 관계자는 "안된다 안된다 하지만 진짜 상황이 심각하다"며 "통상 20~30% 할인하면 세일 기간에 그야말로 '대박'이 났는데 요즘은 웬만해서는 사지를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달 롯데백화점의 매출 신장률은 3.5%로 전년 동기 8.8%에 비해 -5.3%p를 기록했고 현대백화점이 1.1%, 신세계 3.3%로 각각 같은 기간 9%, 12.5%, 에서 한자릿수로 급락했다.
내수시장 버팀목이었던 VIP들마저 소비를 줄이면서 백화점 명품관이나 호텔업계까지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명품 브랜드의 한 매니저는 "손님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그나마 구경만 하고 가는 고객이 대부분"이라며 "명품은 웬만하면 경기를 안 타는데 예약 리스트에 올린 고객들도 확인 전화를 하면 취소하는 경우가 잦다"고 우려했다.
한 호텔 관계자도 "금융위기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회원권을 처분하겠다는 회원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차 사는 것을 포기하거나 미루면서 대표적인 내구재인 자동차 판매도 감소했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 5사가 발표한 판매실적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내수 신차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73만4402대)보다 5.9% 줄어든 69만1246대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에 고유가, 신차효과 약화 등이 겹치며 소비심리가 위축된 까닭이다.
국산차 한 대리점 직원은 "경기침체 여파 때문인지 지난해 말부터 고객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며 "요즘에는 신차 효과도 크지 않으며, 차급을 낮추거나 계약을 미루는 경우가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
이윤재 기자 gal-run@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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