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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서울시 시민결재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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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지난 26일부터 서울시 전자결재보고서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바로 '시민 결재란' 신설이다. 보고서 상단 우측에 자리 잡은 시민란은 담당과장, 국장, 부시장, 시장의 결재 위치보다도 위에 있다.

물론 보고서에 시민란이 신설됐다고 시민에게 직접 결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 후 '시민이 시장'이란 철학을 강조하자 시 공무원들이 이를 반영하기 위해 낸 아이디어이다. 박 시장은 후보 시절 "시장이 되면 보고서에 시민란을 만들어 늘 시민에게 결재받는 기분으로 일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가 집무실 회의탁자 옆에 '시민시장 의자'를 배치해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박 시장의 철학에 맞춰 공무원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겠다는 취지에서 시민란을 신설한 것은 환영할만하다. 실제 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 공무원과 시민간의 소통 바람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청책(聽策)워크숍'이 대표적이다. 시민의 방향설정→공무원의 기본계획 수립→청책워크숍을 통한 시민 의견수렴→공무원의 세부계획 확정 등의 절차로 진행되는 이 워크숍은 공무원이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자결재보고서에 신설된 시민 결재란 역시 시민 중심의 시정을 펼치겠다는 서울시 공무원의 마음가짐을 다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시민란 신설이 박시장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일종의 '전시시정'으로 끝나지 않을까란 염려도 없지 않다.

우선 시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겠다는 취지 자체가 새삼스럽지 않다. 시민에게 초점을 맞춘 시정은 전임 시장 시절 때도 늘 강조됐던 사안이다. 오세훈 전 시장 땐 '시민이 고객'이란 구호를 썼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민의 행복'을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 발표시 칭찬보다는 탁상행정이란 꼬리표가 더 많이 붙어온 게 현실이다. 늘 시민 입장에서 정책을 입안했다고 하지만 정작 시민의 체감지수는 낮았다는 의미다. 박 시장의 새로운 소통창구인 청책워크숍도 현재 담당 공무원이나 시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시장의 동정 자체로 더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시민 결재란 신설도 박 시장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행보의 하나란 해석이 나온다. 벌써부터 서울시 공무원들은 박 시장 취임 후 트위터 등을 매일 챙기며 시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바쁘다. 아예 시장의 성향을 분석하기 위해 '박원순과 시민혁명'이란 책을 단체로 주문한 부서도 있다고 한다.

시민 결재란이 "시정을 펼침에 있어 늘 소통하고 시민을 으뜸으로 섬기겠다는 서울시의 마음가짐을 대내외에 표현한 것이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시민을 으뜸으로 섬기겠다는 정신이 등 떠밀려 되는 건 아니다. 먼저 시민에게 진정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면 시민란 신설도 그저 '생색내기용 시정'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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