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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기록을 깬 그들, 순간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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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냐"-숨이 멎을 듯한 그 순간에, 그는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탐험 일지를 쓰고 있는 로버트 팰컨 스콧. 그는 남극에 첫 발을 디딘 로알 아문센에 이어 두 번째로 남극을 향하다가 그 길에서 삶을 마감했다.

탐험 일지를 쓰고 있는 로버트 팰컨 스콧. 그는 남극에 첫 발을 디딘 로알 아문센에 이어 두 번째로 남극을 향하다가 그 길에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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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길'에는 세월의 지층들이 간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길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탈 것들. 길은 그렇게 우리에게 지난 세월의 기록으로 남았다.

이 '길'을 따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사람들이 한 데 모였다. 남극에 첫발을 디딘 로알 아문센, 우연한 기회에 갈라파고스 제도 답사를 하게 돼 '종의 기원'을 펴내기에 이른 찰스 다윈부터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정복한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 기구를 타고 세계를 한 바퀴 돈 베르트랑 피카르까지.
이들 탐험가 61명은 때론 기쁨을, 때론 절망을 이야기한다. 주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말을 웅덩이에 집어넣어 전기 뱀장어를 잡는 법, 식인종 부족 이야기, 동상 때문에 발이 잘려나갔던 끔찍한 추위의 기억 등이 그것이다.

'탐험가의 눈'을 펴낸 퍼거스 플레밍과 애너벨 메룰로는 먹고 살만한 것을 찾기 위해, 또 살기 위해 해야 했던 '생존형' 탐험은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연구형'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연구형' 탐험은 '생존형' 탐험이 남기지 못한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바로 탐험의 '기록'이다. 이제 '길'을 따라 걸었던 탐험가들이 이 책으로 전하는 '기록'에 귀를 가까이 대보자.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인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모습(왼쪽)과 달에 첫 발자국을 새기고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오른쪽).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인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모습(왼쪽)과 달에 첫 발자국을 새기고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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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정복, 그 기쁨의 순간들='1911년 12월9일. 하느님께 감사하라!'. 남극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로알 아문센의 기록은 의외로 평범하다.

'결국 우리는 지리적 남극에 이르러 우리 기를 꽂았다'로 시작하는 이날의 기록은 '우리는 기념 식사를 했다-바다표범 고기를 조금씩 먹은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이어지며 끝날 만큼 단조롭다.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인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가 남긴 기쁨의 순간도 아문센의 것처럼 담담하다.

텐징 노르가이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것을 두고 "이제 나는 자유라는 생각만 계속 했다"며 "나는 에베레스트에게서 자유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에드먼드 힐러리는 '드디어 우리는 정상에 섰고, 처음 느낀 것은 안도감이었다'라는 글을 남겼다. 모두 심상(尋常)한 기록이지만 어딘가 깊은 울림을 주는 느낌이다.

이에 비하면 달에 첫 발자국을 새긴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이나 마추픽추를 발견한 하이럼 빙엄의 기록은 좀 더 감정적이다.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달에 함께 발을 디딘 채 지는 해를 바라봤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괜찮지 않냐"는 질문과 "여기서 보니 장관이네"라는 대답이었다.

하이럼 빙엄의 기록은 그 글자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을 전할 정도다. 안내자인 어린 소년에게 이끌려 도착한 마추픽추. 그는 그 순간에 대해 '숨이 멎을 정도였다', '왜 아무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았을까?', '내가 발견한 것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등과 같은 기록을 써두었다.

◆마지막 순간, 그 아픔의 기록들=탐험엔 기쁨의 순간과 슬픔의 순간이 언제나 함께 한다.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하와이에 발을 디뎠다가 그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제임스 쿡, 남극을 얼마 안 남겨둔 지점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했던 로버트 팰컨 스콧 등은 아픔의 기록을 남긴 대표적인 탐험가들이다.

제임스 쿡은 1779년 하와이에 도착했다가 신으로 오인을 받고 원주민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삶을 마감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의사 데이비드 샘웰은 제임스 쿡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살이 약간 남은 뼈들이 있었으며, 불에 탄 자국이 있었다… 쿡 선장을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그의 유해를 볼 운명이었다'.

로알 아문센의 뒤를 이어 남극으로 향하던 로버트 팰컨 스콧의 마지막 기록도 가슴 찡하다. '끝이 멀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 부디 우리에게 딸린 사람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R. 스콧'.

'탐험가의 눈'엔 말 그대로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새로운 세계가 가득하다. 당시 찍었던 사진들과 직접 그린 그림, 직접 쓴 기록들은 단편적이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탐험가의 눈/ 퍼거스 플레밍ㆍ애너벨 메룰로 엮음/ 정영목 옮김/ 북스코프/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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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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