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내년 예산편성기조 전면 재검토하라" 지시
#. 10일 오후 2시 정부과천청사. 이명박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을 긴급히 불러모았다. 휴가중이던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임채민 국무총리 실장 등 핵심 당국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과천청사 7층 대회의실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대통령은 당국자들에게 "지금의 위기는 미국과 유럽의 소위 말해서 재정건전성의 위기, 그것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박재완 장관은 "말씀하신 대로 재정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재정 위기의 본질은 정부의 리더십,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현재의 금융불안은 곧 글로벌 재정위기"라며 "이런 점들을 감안해 내년 예산편성 기조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아시아경제 김진우 기자]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이은 국제금융시장의 대혼란은 따지고 보면 재정의 위기다. 이 대통령이 언급했듯, 미국의 국가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그 근원엔 미국 재정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간 세계경제를 떠받쳐 왔던 미국 경제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그렇다면 유럽을 휩쓸고 미국까지 상륙한 재정위기에 한국은 안전한가. 한국 정부는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불거진 국제금융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그 원동력은 바로 튼튼한 국가 재정이었다.
우리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수요를 창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 경기부양을 위해 사상 최대인 28조4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서 재정적자가 43조2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그 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4.1%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8년 외환위기 5.1% 이후 가장 높았다. 2010년에는 GDP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나 재정적자 비율이 1.1%로 낮아졌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다.
문제는 재정지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비해 재정수입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 고령화 등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깎아먹는 요인을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지만, 최근 반값등록금·무상급식 등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로 재정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나라살림살이를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정부는 2013~14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고 국가채무를 GDP 대비 30%대 중반으로 유지하는 등 장기재정운용계획을 철저히 이행한다는 계획이다. 포퓰리즘적인 소모성 재정지출을 막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자리 투자를 늘리는 등 재정을 운용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당장 내년도 총선과 대선이 있는 상황에서 내년도 예산에서 이같은 포퓰리즘 성격의 지출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이 "예산안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본진 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은 "현재 세입과 세출 목표를 굉장히 빡빡하게 잡아 예산안을 단기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 등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투자는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쓸 땐 쓰되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우 기자 bongo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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