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이 본 규철이의 합격비결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이규철 학생은 2008학년도 과학고 입시에 실패하고 우리 학교에 왔다. 오랜 고민 끝에 '기숙형 자율학교'라는 이유 하나 만을 보고 선택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 학교 설립 이래 최초로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사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카이스트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찾아왔을 때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사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설립이래 단 한 명도 합격시킨 사례가 없는 학교니까 못 믿겠다는 듯한 태도가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내가 대입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 설움을 규철이가 떨쳐준 셈이다. 당연한 결과다. 입학사정관이 그렇게 찾는 '자기주도 학습' 전형의 표본이 바로 규철이기 때문이다.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수상. 이런 것들은 그동안 과학고 학생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일반고에선 시도조차 잘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규철이는 용기있게 도전해서 상까지 받아왔다. 사교육도 받지 않았고 특별히 학교에서 따로 준비시켜준 것도 없었다. 수학 동아리를 만들어서 대학에서 세미나 하듯 저희들끼리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물론, 정말 몰라서 물어보면 도와줬다. 하지만 일부러라도 꾹 참았다. 스스로 해야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교사로서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로 학생들을 가르쳐보니까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었다. 평생 공부를 해야하는 이공계열 학생에게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수업시간 풀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왜?" "왜 이렇게 되는데?"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당황해 한다. 아이들에겐어려운 물음이다. 하지만 규철이는 달랐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서류 전형을 거쳐 방문 면접, 토론 면접, 심층 면접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형을 제대로 준비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규철이랑 얘기해서 나온 우리의 전략은 간단했다. '스펙' 더 좋은 애들은 아주 많다.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잠재력을 보여주자.
규철이가 처음 우리 학교에 올 때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사교육 특구 일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 경기과학고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떨어지고 나니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일반 인문계고에 가서 공부할 지, 기숙학교를 갈지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일반고로 가면 계속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고 기숙학교로 오면 혼자 공부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혼자 계획을 짜고 스스로 공부해서 이뤄내는 과정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 "규철아, 카이스트에 입학해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우선 네가 꿈꾸던 공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너를 보며 카이스트를 꿈 꾸는 후배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도 좋은 고등학교,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아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너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 박진영 양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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