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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꼬마 앵무새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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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선영 기자]"아이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서.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들 마찬가지죠. 귀엽네요"
"부디 잘 돌봐주세요"

자식의 혼사를 치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서지만 어째 마음이 편치 않다.
앵무새를 분양하기로 한 날. 전화를 받고서야 잠에서 깼다.

근처에 도착했다는 상대방의 말에 부랴부랴 아기 앵무새를 품에 안았다. 어쩐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녀석이 잠시 반항을 하고는 고분고분 가슴팍에 쏙 안긴다. 녀석이 먹던 모이를 일회용 팩에 챙겨담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둘의 인생이 평행선이 되겠구나. 제대로 밥을 못먹이고 보내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마니아]"꼬마 앵무새를 잘 부탁해" 원본보기 아이콘


앵무새를 키우다보면 이처럼 분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분양 사유도 다양하다. 개체수 정리, 개인사정, 상애를 맞추기 위해서 등.

그러나 분양을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새의 종류나 나이, 성별을 확실히 확인하기 어려운데다 마음에 딱 맞는 입양자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앵무새 분양이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이뤄지면서 책임있는 분양에 대한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일단 앵무새 분양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

인터넷 까페나 동호회 사이트에 앵무새 분양 공고를 낸다. 사진과 앵무새의 기본 특징, 분양가격, 직거래 내지 고택(고속버스택배) 등 분양방법을 적시한다. 그러면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공고를 보고 연락하는 식이다.

우선 분양자와 입양자가 직접 만나는 직거래가 있다.
앵무새를 직접 볼 수 있고 전주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가 가는 방법이다. 인터넷 공고를 보고 연락을 받아서 가격을 협상하고 약속장소를 정한다. 때로는 이런 식의 직거래 가 또 다른 애조인과의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하니 권장할 만하다.

먼 지역에서 분양을 받고자 할 경우 고택이나 KTX택배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고속버스에 실어 보내면 현지에서 입양자가 받아보는 식이다. 원거리에서 앵무새를 주고 받기에는 편리한 방법이나 앵무새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자제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앵무새가 따르던 주인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된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덜컥 고속버스에 혼자 실어보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기도 하다. 이 뿐만 아니라 앵무새의 건강 상태를 미리 확인할 수 없어 자칫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최근 한 앵무새 용품 사이트에서는 사이버 경찰로부터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앵무새를 분양받았는데 비정상적인 새가 와서 입양자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양심없는 분양자도 문제지만 앵무새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택배로 받은 입양자의 무심함도 안타깝다. 이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일부 웹사이트의 경우 실명제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예방법은 직거래다.

중대형 앵무새의 수명은 짧아도 20년 이상이다. 사람으로 쳐도 20년 인생은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앵무새를 기르기로 했다면 녀석의 긴 삶을 책임져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앵무새를 데려와서 20년 이상 기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면 데리러 가는 수고 쯤은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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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담에 이찌고이찌에(いちごいちえ,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인연일 지 모르니 짧은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다.

앵무새를 보내고 돌아설 때마다 저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 녀석이 태어났을 때 감사했던 마음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

항상 옆에 와서 앉아있던 녀석이 가고 없으니 마음이 안좋다. 그러나 한번의 짧은 인연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이 오는 법. 왕관앵무 부부는 지금 알 4개를 또 품고 있다.




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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