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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눈먼새' 깨돌이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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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선영 기자]우리집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새가 한마리 살고 있다. 모란앵무 골든 체리. 이름은 깨돌이다.

사람을 따르지 않는 번식조라는 점은 분양의 가장 큰 장애요소다. 깨돌이의 전 주인은 무료 분양으로 깨돌이를 내놓았다.
"동물은 공짜로 데려다 키우는 거 아니다"라며 강아지 한마리를 얻어올 때도 꼭 사례를 주곤 하던 기자네 할머니의 말씀대로 약 2만원의 몸값이 지불된 채 깨돌이는 기자네 집으로 왔다.

깨돌이를 데려온 첫날. 준비없이 장애조를 기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깨돌이는 집에 오자마자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듯 열심히 돌아다녔다. 부리에 장애물이 부딪히면 돌아서고, 부딪히면 돌아서고를 되풀이했다.

밥을 먹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깨돌이는 밥그릇과 물그릇에 몸이 닿을 때마다 움찔 하고 기겁을 했다. 손으로 뭔가를 집어서 먹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새장에 넣어주니 겨우 그릇의 모이를 조금씩 깨어 먹는다. 게다가 불러도 오지 않는 번식조인 관계로 돌아다니다가 가구 밑에라도 숨는 날이면 찾기도 힘들 듯 했다. 할머니는 "어쩌려고 눈먼새를 데려왔노"하며 웃으셨다.
그랬다. 그냥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예상외로 꼬이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마니아]'눈먼새' 깨돌이가 사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깨돌이는 백내장을 앓으면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반응도 없고 가끔 소리나 지르는 새를 그냥 기를 수 있을까?

답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왕관앵무 부부에게서 새끼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깨돌이가 어린 새들 소리에 반응을 한 것.

그때부터 깨돌이는 어린 새들의 보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린 새 소리를 들을 때마다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서는 지키고 서 있다. 새장 밖에 꺼내놓으면 어린새들의 위치부터 파악하는 모습이 귀엽다. 심지어 어린새들의 이유식도 같이 먹으려고 했을 정도였다.

[마니아]'눈먼새' 깨돌이가 사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요즘 깨돌이는 듬직한 안내조가 한 마리 생겼다. 어린 새 중 영리한 녀석 한마리가 깨돌이를 보살펴 준다.
깨돌이가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린 왕관앵무는 부리를 가는 소리를 내서 깨돌이를 돌아오게끔 유도한다. 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을 잘하는 왕관앵무가 깨돌이에게 다가가 많은 말을 쏟아낼 때도 있다.

깨돌이와 함께 살면서 장애조를 기르는 노하우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냥 깨돌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지를 지켜본 것이 전부다.

생태계에서 장애를 가진 개체는 생존에 큰 위협을 받는다. 먹이를 구하는 것은 물론 적을 식별하고 위험을 감지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곁에 다가서는 법이 없던 깨돌이는 이제는 손으로 잡아도 가만히 있다.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을 터득한 셈이다. 아직도 부지런히 집안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제는 장애조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저 눈이 조금 안보일 뿐이니까.




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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