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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지금은 운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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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해가 걸린 어느 날이었습니다. 백화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골목길에서 요란스런 자동차 경적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고 뒤를 돌아봤습니다. 욕설을 퍼붓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비상깜빡이에다 상향등까지 켜가며 소란스러웠습니다.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운전자였습니다. 갈 길이 바쁘니 빨리 가든지 길을 비켜달라는 의사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길이 좁고, 앞에 한 할아버지가 직접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젊은 운전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차를 몰고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운전대만 잡으면 누구나 난폭해지고 입이 험해진다는 우리의 교통문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일까요?

‘영국신사’도 예비군복 입으면 ‘개’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예비군복만 그런 게 아니라 운전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차를 몰다가 횡단보도, 교차로가 나타나면 더 속도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차가 방향지시등을 넣고 차로를 변경하려해도 절대 끼워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도를 높여 앞차에 바짝 붙입니다. 마치 경쟁에서 뒤진 듯, 인생에서 뒤처진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못견뎌 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있던 여유도 사라지고 얌체 운전자, 난폭한 운전자가 되는 현장을 심심찮게 목격할때가 많습니다.

거북이 운전을 하는 노인이나 여성운전자가 나타나면 설교 한마디는 꼭 하고 맙니다. 설교 정도는 다행입니다. 퍼붓는 욕설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교통문화입니다.

시니어 관련 연구를 하다 보니 운전을 하면서도 노인운전자들을 보면 “이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배려할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노인운전자는 젊은 사람보다 운경신경이 둔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량 내 장치의 조작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긴급 상황에서 사고 위험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95만여명(2008년 기준)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핵가족 현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노인들끼리 사는 경우가 많다보니 앞으로 노인운전자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인 운전자와 관련된 교통사고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8300여건으로 집계(경찰청집계 2007년)되고 있습니다. 2003년(4562건)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늘어난 것입니다.

주된 사고 원인은 교통표지나 신호에 대한 반응속도가 늦고 순발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경찰청 분석입니다. 노인들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치사율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의식해 만든 것이 실버마크 제도입니다. 경기도가 ‘노인이 행복한 교통만들기’를 위해 65세 이상 노인운전자를 위해 만든 차량용 실버마크 스티커제도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이 운전하는 차량을 발견하면 추월이나 난폭운전을 자제하고 배려와 양보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마주보게 하여 하트모양을 만든 이미지가 흥미롭습니다. 경기도의 이 캠페인이 자리를 잡아 노인을 배려하는 운전문화가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실 이 캠페인은 오래 전에 도입된 적이 있습니다. 2006년 4월께로 기억합니다. 당시 경찰청이 실버마크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같은 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대한노인회까지 참여한 이 캠페인이 구호로만 흐지부지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홍보나 실천 프로그램이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노인’ 하면 지팡이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정관념입니다. 하지만 실제 지팡이를 사용할 정도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운전을 하실까? 하는 의문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운전이 서툰 아줌마가 복잡한 도로에 나서면 뭇사람들의 힐난의 눈초리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자가? “일없이...” “집에서 밥이나 하지”라는 의미가 숨어있었겠지요.
우리사회의 노인들도 이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60대 후반의 유트리 회원께 넌지시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실버마크가 나왔는데 선생님 차에 부착하시겠냐구요.

“누가 저런 걸 붙여? 우리가 뭐 애들인지 아나~”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선진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노인들이 선호하는 차는 스포츠카라고 합니다. 스포츠카를 타는 노인에게 저 스티커를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미국에서는 노인 운전자들이 안전교육을 받을 경우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도로 구조나 교통표지판 등을 노인이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개선하는 정책을 실시중이라고 합니다.

고령사회로 다가갈수록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노년의 문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다양한 해결책들이 고민되고, 시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버마크라 하여 그것도 노년을 지팡이로 상징화하면서 배려하라는 것도 좋지만 노인을 위한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하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혜택없이 배려만 강조하는 실버마크-이를 보며 노인들은 서러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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