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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의 호모폴리티쿠스] 권력의 하산길, 담담해야

최종수정 2021.11.26 11:30 기사입력 2021.11.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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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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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통보를 받지 못한 직원들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십시오." 1997년 2월25일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다.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였다. 새 대통령 취임 전날 오후 청와대 스피커가 새로운 권력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정권 말기 청와대의 스산함이 극에 달한 듯했다.


정권이 넘어가자 청와대는 적막강산이 돼 갔다. 당시 공보수석실(지금의 국민소통수석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평소 조용히 지내던 한 비서관이 보자고 했다. 당국자와 언론인들 간 일종의 연락책인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을 때였다. "새 집권층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두어 달 동안 상의할 일 있으면 나와 해달라"고 요청했다. 낮에는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상대 진영에 줄을 대던 인사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단임 대통령제에서 권력은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여당이 재집권해도 전임 대통령 주변이 쓸쓸하긴 마찬가지였다. 전두환, 김대중, 이명박은 집권당 승리를 보았던 대통령이었다. 후임 대통령을 후계자 취급도 했다. 승계한 정권이 전임 대통령과 측근에게 모질게 하지는 않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도의 차가 있을 뿐이었다. 과거를 털지 않고는 지지도를 올리기 힘들었다. 같은 편에게 당하는 게 더 아프기도 했다.


대중적 인기는 분노를 먹고 자란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에서 파시즘, 나치즘이 대두한 과정이 그랬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했다. 인간 심리의 근본은 꼬인 측면이 있다. 공통의 적, 희생양을 만들면 이성의 눈은 마비된다. 모범적 민주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대변한다.


5년 단임제 이후 전 정권 단죄가 반복됐다. 모두들 집권 시기 경각심을 갖고 조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연, 혈연, 학연의 뿌리가 깊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부정부패가 근절되기 힘든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청렴과 공정을 향한 국민 눈높이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적 힐난을 넘어 법적 응징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누구든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일반인까지도 갖게 된 것이다. 극렬층들은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키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는 사이 법의 단두대는 계속 넓어져 갔다. 포괄적 뇌물, 직권남용, 직무유기. 명백한 부정이 아니더라도 사법의 칼날은 언제나 목 위에 있다. 검찰 등 사정당국 개혁이 사회적 어젠다로 등장했던 배경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최근 희망사항 하나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때 ‘문전박대’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쫓기듯 비난 속에 물러나라는 원뜻이 아니었다. 큰 박수를 받는 첫 대통령을 의미했다. 문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다른 점이 있다.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지지율이 30~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지지층이 견고하다. 정권 말 되풀이됐던 집권당 탈당 요구도 잠잠하다. 퇴임 후를 위한 개헌 등 무리한 시도를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전박대'를 받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야당의 이른바 태극기부대들은 '당한 만큼 돌려주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당 후보 진영도 만만찮다. 현 정권과 강하게 차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야 중도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벌써 부동산 정책 등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막판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대북정책에서도 파열음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단임 대통령 말기를 어떻게 마무리 짓는 게 옳을까. 평상심을 잃지 말고 담담해야 한다. 석양을 일출로 바꿀 수는 없다. 5공화국 막바지까지 전두환을 칭송하는 '땡전뉴스'가 유지됐다. 임기가 끝나자 선전 효과는 바로 끝났다. 전두환·노태우 사이의 권력이양 기간 측근 간에 실제 총부리가 겨눠질 만큼 긴장감이 흘렀다. 그래도 지는 권력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대선판이 벌어지면 임기 말 대통령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야당은 물론 여당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집권당에서 대통령 인형 화형식까지 열렸던 전례도 있다. 결국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하곤 했다. 문 대통령을 향한 탈당 요구가 없는 것만 해도 큰 변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얼마 전 여당 후보에게 일말의 서운함을 표시했다. 현 정부 정책과 다른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차별화의 정도는 점차 높아질 여지가 다분하다. 참모들도 대범하게 대처하는 게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 여야를 막론,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면 그를 바로잡는 정도로 충분하다. 감정을 뺀 팩트체크다.


그리고 대통령은 사람을 끝까지 붙들어 놓을 필요도 없다. 주변 인사들에게 무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정치 세력을 구축해 퇴임 이후를 도모하는 구상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두테르테 대통령 일가 얘기는 필리핀에서 통한다. 우리 사회는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용인하지 않는다. 강력한 역풍을 부를 뿐이다.


대통령 하산길에 큰 도전은 검찰권 관리였다. 지금도 여야 후보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몇몇 정권에서 현직 대통령이 권력유지를 위해 정보기관의 비밀파일을 꺼내기도 했다. 뒷조사 첩보 자료를 활용해 대선판을 뒤집자고 측근들이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건의하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친위쿠데타 논의도 있었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이 평가받을 대목이 있다. 헌정질서를 깨지 않고 단임을 유지해온 전통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굴곡은 있었지만 굳건히 유지되는 배경이다. 검찰과 경찰의 정당한 수사로 비리가 드러나면 대선 후보라도 덮을 수 없다. 그러나 집권자가 마지막까지 정치적 의도로 검찰권을 휘두른다면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선거 관리의 중립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검찰, 경찰, 공수처 중립이다.


차분히 국정을 마무리하고 과거 청산 악순환이 누그러지길 기대하는 편이 낫다. 전직 대통령 주변을 괴롭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공감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보복 운운은 선거전에서 활용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진영 논리가 극에 달하는 순간 변화가 생긴다.


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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