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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삼국유사의 가치는 삼국사기를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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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용 작가 ‘고전 vs 고전’
동일한 영역·주제 다룬 고전 비교, 그 가치와 핵심에 접근하는 인문서
삼국유사 비현실적 이야기 가득…당시 생활·사회상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표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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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에 있는 ‘삼국유사 권4~5(三國遺事 卷四∼五)’는 지난해 8월 국보가 됐다. 완질(完帙)은 아니나 서지학적 의미가 높다고 평가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삼국유사’ 판본에 대한 교감(校勘)과 원판 복원에 필요한 자료로서 역사·학술적 중요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근간이다. 고려 충렬왕 7년(1281)에 일연 스님(1206~1289)이 편찬했다. 고조선부터 삼국 시대까지 역사·문화 이야기를 한데 엮었다. 그래서 같은 시기를 다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자주 비교된다.

두 책의 성격은 상반된다. ‘삼국사기’는 국가사업으로 제작된 정통 역사서. 유학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삼국유사’는 정통의 역사와 거리가 멀다. 있을 법하지 않은 설화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삼국사기’에도 그런 내용은 있다. 하지만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등의 건국설화 정도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부처·신선·귀신 같은 존재가 출몰하는 다양한 전설이 수록됐다. 이 때문에 한동안 정규 역사 영역으로 진입하는 데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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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용 작가의 ‘고전 vs 고전’은 비슷한 두 고전을 비교해 그 가치와 핵심에 접근하는 인문서다. ‘파브르 곤충기’와 ‘시튼 동물기’, ‘어린 왕자’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이 비슷한 영역·주제를 다루는 책들에서 판이한 입론과 주장을 대조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에서 주안점은 ‘무엇을 역사 기록으로 볼 것인가’다. ‘삼국유사’의 가치와 매력을 찾는 데 주력한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혜공왕 2년(756) 강주에서 일어나 자연현상이 기술돼 있다. "땅이 꺼져 못이 되었는데, 길이와 너비가 50여 척이나 되었고 물빛은 검푸렀다." 당시 지진이 많이 기록된 점을 고려하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강주 관가의 몸채 동쪽에 땅이 차츰 꺼져 못이 되었는데, 길이가 13척이요, 너비가 7척이나 되었다. 갑자기 잉어 대여섯 마리가 생겨 계속하여 점점 커지니 못도 역시 이에 따라 커졌다."

두 서술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는 연못이 새로 만들어진 과정과 그 외양만 설명한다. 반면 ‘삼국유사’는 연못에 잉어가 나타난 일과 그로 인한 연못의 변화까지 덧붙이며 설화적 전개를 보여준다. 그래서 연못이 새로 생겨난 일에 어떤 계시가 담겨 있는 것처럼 윤색한 느낌을 준다. 잉어가 자라면서 연못이 커진다는 내용은 그냥 연못이 생기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다.


정 작가는 ‘삼국유사’를 가리키며 "지금도 아주 간단한 사실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살이 붙어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것처럼 와전되는 경우는 빈번하다"고 설명한다. "가령 홍수를 단순히 비가 많이 온 사건으로 전하지 않고 세상을 징벌하기 위한 일로 본다든가, 전염병이 닥치면 신이 노했다거나 하는 해석을 덧붙이는 것과 같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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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전설을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할 순 없다. 당시 사람들의 심리나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여지가 있다. 문자적 의미의 사실은 아닐지라도 생활상과 사회상을 반영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인 것이다.


풍부한 설화적 상상력이 넘치는 이야기는 과거에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 본연 심성의 구조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설화는 재미도 있다. 많은 사람이 ‘삼국유사’를 읽지 않았어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고 있을 정도다. 동화·소설·영화·드라마 등으로 개작돼 수없이 접한 덕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건 이야기가 지닌 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다. 정 작가는 이것을 "딱딱한 역사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향기"라고 표현한다.


"사람이 그저 현실과 사실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사람의 숨결이 있는 모든 이야기를 살려내 후대에 전하기 위해 ‘삼국유사’를 지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자칫하면 우리가 알 수 없었을 삼국시대 사람들의 마음과 향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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