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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부캐의 시대, 또다른 나를 찾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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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얼마 전 나는 사랑에 관한 인문학 책을 하나 출간했다. 책을 내면서 약간 어색했다. 이제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종의 전업 작가로 인문학책을 쓰며 살았지만, 변호사로 사는 지금에서는 왠지 인문학책을 내는 건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책을 내더라도 변호사 투쟁기나 법정 소설을 써야 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MZ칼럼]부캐의 시대, 또다른 나를 찾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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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야말로 더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변호사 자체’가 아니라 반대로 변호사가 내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변호사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당연히 사랑도 하고, 육아도 하며, 여행도 한다. 여전히 퇴근 후 아이가 잠든 밤이면 매일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런 나의 존재를 ‘변호사’에 굳이 가둘 필요는 없다.


최근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복수화’하고 있다. 유튜버로서 부캐를 만든 직장인도 많고, 다양한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뉴스레터를 운영하거나, 서브직업을 얻기 위해 주말마다 교육받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 작가들만 하더라도 전업 작가보다는 별도의 직업이 있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이러한 ‘부캐의 시대’가 도래한 데는 기술의 발전도 한몫한다. 나만 하더라도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구내식당, 침대나 부엌 등 어디에서나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1인 매체의 발달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마케팅이나 부업을 하는 일 또한 기술의 발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달로 더 효율적인 부업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직장에 다니며 글을 쓰는 걸 넘어서, 표지 제작이나 인쇄 공정을 AI나 자동화 플랫폼 등에 맡기면 1인 출판사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 현재도 유튜브 영상 중 상당수는 AI가 만든 것이고, 블로그 포스팅도 AI로 할 수 있다고 하니 1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한정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한 명의 개인이란 곧 그가 속한 물리적 소속과 일치되었다. 그 소속이란 대개 가족이나 회사 같은 집단이었고 개인들은 그런 물리적 환경 바깥으로 자기를 확장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회사 안에서도 휴대폰만 켜면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 속 닉네임 존재로 자기를 ‘분열’시킬 수 있다. 다소 비윤리적일 수 있겠지만 SNS나 온라인 게임에서 성별을 바꾸어 누군가와 가상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쓰기에 욕심이 있다. 언젠가는 동화책이나 그림책, 소설책도 내고 싶다. 어느 때에는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직장에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법전을 뒤지고, 의견서에 넣을 문구를 고민하되, 퇴근 이후에는 나만의 글쓰기 세계를 펼쳐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시대를 나름대로 좋아하고 있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유를 알기를 바라기도 한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 무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한 소비만이 아니라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글쓰기 모임을 찾아가거나,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거나, 유튜브를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우리에게 열어놓은 길이다. 우리는 ‘여러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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