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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 광해군과 '국조정토록'

최종수정 2021.10.14 10:50 기사입력 2021.10.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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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명·청 교체기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
참고서는 '국조정토록'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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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후 전투 당시 조선군은 후금군과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계속된 명의 지원 요청을 거부하고 후금과 친선관계를 추구했다. 이러한 중립 외교 정책으로 조선은 명과 후금의 전쟁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불만을 초래했고, 결국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원인이 되어 광해군은 폐위되고 말았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에는 사르후 전투에 원군을 파병할 당시 광해군의 발언이 남아 있다.


"군문(軍門)과 경략(經略) 등의 회자(回咨) 속에 칙서가 내려온 뒤에야 군대를 일으켜 들여보냈던 조종조(祖宗朝)의 옛 사례를 인용하라. ‘고사촬요(攷事撮要)’와 ‘정토록(征討錄)’에 있는 곡절을 자세히 고찰하여 일일이 양 아문(衙門)의 회자 속에 첨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호서(胡書) 때문에 위태롭고 절박해진 소방(小邦)의 사정을 급히 고하는 중이었는데, 자문(咨文)과 격서(檄書)가 도착한 이상 감히 호소하지도 못한 채 지금 바야흐로 1만 병력을 정돈하여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말을 개진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광해군이 명에 보낼 서신 작성 때
고사촬요와 정토록 참고하라 지시
국조정토록, 상·하권 1책으로 구성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광해군은 명에 보낼 서신에 고사촬요와 정토록을 참고해 내용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고사촬요는 1554년 어숙권이 편찬한 백과사전 형식의 책이다. 여기에는 사대교린(事大交隣)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식 등이 정리되어 있다. ‘국조정토록(國朝征討錄)’은 조선 전기에 발생한 7차례의 대외 정벌사를 기록한 책이다. 1419년 대마도(對馬島) 정벌, 1433년 건주위(建州衛) 여진 토벌, 1467년 건주위 여진 토벌, 1479년 건주위 여진 토벌, 1491년 우디거(兀狄哈) 여진 니마거(尼麻車) 토벌, 1492년 건주위 여진 토벌, 1510년 삼포(三浦) 왜란 토벌이다. 왜구 정벌이 2차례, 여진 정벌이 5차례다.


국조정토록은 상·하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훈련도감(訓鍊都監) 목활자로 찍혀 있다. 최초 편찬자와 저술 과정은 불확실하지만, 대체로 1548년 이후 1598년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외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장서각 소장본은 1946년 이후 수집가인 윤석찬씨가 통문관(通文館)에서 구입했고, 이것을 다시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사들인 것이다. 2007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1511호로 지정되었다.


장서각 소장본 외 일본 전사본 남아
1965년 반환문화재 속에 포함돼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파병
공세적 방어작전·실전 내용들 수록돼

국조정토록은 장서각 소장본 외에 일본 전사본(傳寫本)이 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반환문화재 목록 속에 일본 전사본이 끼어 있었다. 전사본의 마이크로필름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국조정토록 필사본(筆寫本)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18세기에 필사본을 바탕으로 탈초해 베껴 쓴 것이 일본 전사본이다. 일본 전사본의 경우 오자(誤字)와 초서체(草書體)가 남아 있지만, 장서각 소장본의 일부 누락된 글자를 보완할 수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의관(醫官) 요안인(養安院) 마나세(曲直瀨) 씨가 예전에 조선의 서적 수백 권을 소장하였다. 그런데 화재를 자주 만나서 그 태반을 잃어버렸고 지금은 약간의 책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의 선조 가운데 한 분이 일찍이 관백(關白)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밑에서 벼슬을 했는데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임진년(壬辰年) 전쟁으로 획득한 문적을 모두 하사받았다. 대대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많이 있지만, 실로 200년 전 다른 나라의 물건으로 당시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세상은 변했음에도 이 책은 온전히 남아 있으니, 비록 소중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개탄스럽기도 하다. 관정(寬政) 병진년(丙辰年) 여름에."


일본 전사본에는 후기(後記)가 붙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보이는 ‘병진년’은 1796년이다. 후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의 서적 수백 권을 일본으로 가져갔고, 그것은 도요토미에게 상납되었다. 조선 서적들은 도요토미 밑에서 일하던 마나세 가문의 선조가 하사받아 소장했는데, 200년이 지나면서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국조정토록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국조정토록을 소장하고 있던 마나세 가문은 전국시대와 에도막부시대에 유명했던 의사 가문이다. 마나세 도산(曲直瀨道三·1507~1594)은 일본 전국시대 의사로서, 당시 일본 한방의학을 부흥시킨 인물이다. 1545년 쇼군(將軍)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케루(足利義輝)의 병을 고치면서 명성을 크게 얻었다. 이후 양자인 마나세 겐사쿠(曲直瀨玄朔·1549~1632)가 가문을 이어받았고, 쇼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마나세 쇼린(曲直瀨正琳·?~1611)은 1576년 마나세 가문에 입문하였고, 이후 마나세 겐사쿠의 딸과 결혼하면서 마나세 가문을 이어받게 된다. 마나세 쇼린은 도요토미를 섬겼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따라 에도로 이주하여 요안인(養安院)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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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조정토록은 초서(草書)로 되어 있어서 새롭게 고쳐 쓰지 않으면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18세기 말엽 하야시 주사이(林述齋· 1768~1841)는 자신의 제자인 오고우 요시노리(大鄕良則)에게 해서(楷書)로 고쳐 쓰라고 지시했다. 하야시 주사이는 에도 후기의 유학자로서, 하야시 라잔(林羅山) 가문의 8대 당주다. 당시 에도막부 문서 행정의 중추였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마나세 가문에 소장되어 있던 국조정토록이 1796년 무렵 해서체로 옮겨 기록되어 일본 전사본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 1965년 반환문화재 속에 포함되어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르후 전투 이전인 1614년 7월 비변사(備邊司)는 광해군에게 계를 올렸다. 민간에 국조정토록이라는 책이 있는데 왜적과 오랑캐를 정벌한 거사가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책이 오래되어 낡았지만 상고할 만한 일이 있으므로 사자관(寫字官)에게 명하여 똑같이 베껴 쓰게 한 다음, 광해군이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광해군은 그 책을 등서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한 곳에 1부씩 간직하도록 지시했다. 민간에서 유통되는 병서였지만 그만큼 국방에 중요한 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르후 전투 당시 광해군은 왜 국조정토록을 참고해 정책을 입안했던 것일까. 국조정토록에는 조선 전기 공세적 방어작전에 대한 실전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파병이었지만, 국조정토록에 수록된 북방 여진과의 전투 배경, 내용, 경과, 처리 방식 등은 국방 정책을 수립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현재 선진 2개국(G2)이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시대 속에 살고 있다. 400년 전 명·청 교체기와 광해군의 중립 외교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해 보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외교 및 안보 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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