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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후]"아빠와 살고 싶어요" 소녀의 바람, 그리고 회복적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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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10살 소녀가 판사에게 빌었다. "아빠와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아빠는 엄마를 죽였다. 흉기로 십수 차례 찔렀다. 소녀는 그 참혹한 광경을 봤다. 그런데도 아빠를 선처해달라고 했다.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판사는 아빠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아빠는 구치소로 갔다. 소녀는 그렇게 엄마를 잃고, 아빠와도 이별했다. 지난 17일 서울고법의 한 법정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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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했던 아빠… 왜 이런 일이

아빠는 버스기사였다. 주위에선 매사 성실·근면하다고 얘기들 했다. 소녀에게도 아빠는 책임감 강한 가장이었다. 이런 아빠의 삶은 작년 9월 송두리째 바뀌었다. 소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사진이 화근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아빠가 모르는 남녀와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외도를 의심했다. 격한 다툼이 이어졌다. 1시간 넘게 고성이 오갔다. 아빠는 이 과정에서 이성을 잃었다. 엄마를 때리고선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왔다. 그렇게 다툼은 살인으로 끝맺음났다. 아빠는 사건 직후 소녀을 통해 경찰에 신고해 자수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시작은 사건 당일로부터 5년 전이었다. 소녀가 4살 때다. 엄마는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게임에 몰두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아빠 몰래 여행도 다녀왔다. 아빠 의심이 커졌다. 엄마와 다투는 날도 늘었다. 아빠는 그래도 가정을 지켜려고 했다. 엄마에게 부부 심리 상담을 받자고 했다. 엄마가 거절하자 홀로 센터를 찾아 심리상담을 받았다. 아빠의 우울증은 이때 찾아왔다.


소녀가 이 사건 남은 피해자

1심은 이런 사정을 참작했다. 소녀는 당시도 아빠를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올해 2월 아빠에겐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사람 생명을 침해한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인될 수 없다"고 1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 같은 1심 판결에 대해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며 아빠 측 항소를 기각했다. 이 사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는 특별양형인자를 고려했을 때 징역 7년에서 12년이었다.


법정에서 아빠는 피고인, 엄마는 피해자로 각각 불렸다. 소녀는 목격자, 또는 신고자였다. 물음은 여기서 비롯된다. 소녀는 4살 때부터 부모가 다투는 걸 봐왔다. 다툼 끝에 엄마가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남은 아빠가 살인자로 낙인 찍혀 재판받는 모습을 봤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것이다. 소녀는 현재 친할머니 보호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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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소녀 바람에 응답할까

'회복적 사법'이란 게 있다. 법원이 단지 양형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사자들이 피해를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2년 전 서울고법에서 화두가 됐다. 자식들과 동반자살하려다 살아난 어머니에게 보석을 허가해 지켜본 뒤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빚 문제로 다투다 모친을 죽게 한 딸은 "사회 책임도 있다"며 5년을 감형했다.


소녀의 아빠에겐 앞으로 대법원 재판이 한 번 더 남았다. 물론 그가 상고한다면 말이다. 대법원 재판은 사실심인 1, 2심과 달리 법률심이다. 앞선 원심이 법률상 해석이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살핀다. 앞선 1·2심 재판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다. 양형부당을 다투는 아빠의 상고가 받아 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대법원이 '남은 피해자'인 소녀를 위해 회복적 사법을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썼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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