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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빚 탕감法' 본격 추진…"누가 제대로 빚 갚겠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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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 은행법 개정안 등 상정
대출 원금 감면 가능토록…전 세계 유일무이
업계 "자영업 손실 금융사가 떠안으라는 法"
전문가 "모럴헤저드 우려·저신용자 대출 더 못받을 수도"

윤관석 국회 정무위 위원장이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윤관석 국회 정무위 위원장이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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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성기호 기자, 송승섭 기자] 재난으로 자영업자·직장인의 소득이 줄어들 경우 금융사가 사실상 의무적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전 세계 유례없는 법안이 추진된다. 이 법안은 정부와 금융권, 법안 심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회 전문위원까지 반대 입장을 내고 있지만, 여당이 과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만큼 민심을 잡기 위한 것이지만 이 같은 포퓰리즘 청구서는 차기 대선에서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현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을 역임했던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했다.

개정안은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의 급격한 변동으로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 원금 감면, 원리금 상환 유예를 신청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은행은 신청인의 소득 감소 규모 등을 고려해 관련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위기 시 자영업자 소득이 급감하면 은행에 채무 탕감을 요청할 수 있고 은행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을 만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대출감면이나 보험료 납입 유예 등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제안 이유로 ‘사업주의 도산에 따른 실직자 확대, 빈부격차 심화 등을 막아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재난 발생 시 재정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 민간 상장 기업인 금융사에 손실 분담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경제 상황이 조금만 악화해도 대출 원금을 깎아달라는 사람이 많아지는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 발생 우려와 취약계층의 대출 문턱만 높이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해외 어디에서도 대출 원금을 감면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정도가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 유예를 입법화했고, 대부분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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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금융권도 반대 입장 "신용사회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

이 법안은 정부와 금융권, 국회 전문위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법안을 발의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은행이 채무 조정 요청에 따르지 않는다고 과태료를 물게 된다면 시스템과 신용사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그런 것은 금융사가 아니라 재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되는 재난의 범위도 모호하다.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재난의 기준은 태풍·홍수·호우 등 자연 재해 등을 비롯, 화재·붕괴·폭발 등 사회적 재난, 기타 대통령이 경계 이상의 위기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재난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총 망라돼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감염병과 가축전염병을 비롯, 미세먼지와 환경오염 사고 등도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재난으로 포함된다. 만약 미세먼지가 심해져 피해가 막대하다고 판단되면 은행에 원금 탕감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손해를 금융사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금융업이 규제 산업이라고 해도 엄연한 사기업인데 정치권의 간섭이 과도하다는 불만도 거세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하면 재정으로 대응해야지 민간 상장사인 금융사가 왜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이자 상승을 불러와 피해는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하고 있는 다른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영업자의 손실을 은행이 떠안으라는 뜻"이라며 "이익공유제가 아니라 이익몰수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읍소했다.


전문가들도 현행 금융 시스템을 역행하고 시장질서를 흔드는 법안이라고 우려한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법안"이라며 "대출은 신용평가기관이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도와 금리를 정하는 시스템인데 원금을 깎아 준다면 시스템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금 탕감과 변제액 조정은 원칙적으로 법원에서 다루는 게 맞다"며 "긴급하다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대출 원금을 깎아 달라거나, 아예 상환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대출을 받는 모럴 해저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의 재산권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며 "만약 대출이 부실화된다면 은행도 함께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법안이 적용되면 저신용자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 교수는 "좋은 의도로 법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은행은 상환이 가능한 차주들만을 대상으로 대출을 진행할 수 있다"며 "오히려 저신용자들의 대출은 더 힘들어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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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선거로 촉발된 포퓰리즘,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까 우려

금융권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 시간표를 감안하면 이 같은 포퓰리즘은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시장논리를 휘젓는 상황이 계속되면 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이 무너지고, 그 피해는 취약계층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무위에는 여신금융기관이 임대인의 대출 이자율을 인하하고, 국가가 이차보전하는 내용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됐다. 영업보상 외 임대료·대출이자 등 감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소상공인기본법 일부개정안’ 도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은행권에 여당발(發) 고통분담 고지서 청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은행에서 서민금융상품 재원을 위해 연 1000억원 가량을 걷어 서민금융을 지원해 ‘금융권 이익공유제’로 평가되는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은 지난달 통과됐다. 여당의 요구에 따라 지난달 종료 예정이었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도 재연장됐다. 이낙연 전민주당 대표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불러놓고 예대금리 완화를 요구했고 홍익표 정책위원장은 "임대료만 줄이고 멈출 것이 아니라 은행권의 이자도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입맛에 맞게 금융정책이 활용되면서 금융산업이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관치금융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현 상황은 관치를 넘어 정치가 금융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며 "도를 넘는 포퓰리즘도 문제지만 정치권이 금융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권 스스로 금융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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