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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손수레, 인도·차도 어디로 다녀야 할까요 [한승곤의 취재수첩]

최종수정 2020.10.31 13:47 기사입력 2020.10.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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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 차로 분류, 차도 아닌 보도로 다니면 범칙금
도로서 폐지 줍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2016~2018년 서울서 18명 사망
국회, 2017년 법 개정안 발의했으나 계류 중

서울 한 번화가 도로에서 한 노인이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위태롭게 끌고 가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서울 한 번화가 도로에서 한 노인이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위태롭게 끌고 가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편집자주] 기사에서 전하지 않은 취재 뒷얘기를 전해드립니다. 현장에서 수첩에 메모하며 보고 들은 생생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그대로 전합니다.


"오히려 인도가 더 불편할 수 있어요." , "그래도 도로보다는 덜 위험하죠." , "일단 도로는 차도 많고 위험하지 않나요?"

지난 28일 '폐지 수거 손수레, 인도로 다녀도 되지 않나요 [한기자가 간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독자분이 댓글을 통해 여러 의견을 주셨습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이 이 일을 도로에서 하다 보니 차량에 치여 숨지거나 하는 일이 많아, 인도(보도)로 다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취지의 기사였습니다.


현재 폐지 줍기에 사용되는 손수레는 현행법(도로교통법 2조17호)에 따라 차로 분류합니다. 차도가 아닌 보도로 다니면 불법으로 범칙금 3만 원이 부과됩니다.


폐지를 주워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 처지에서 이 3만 원은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2017년 9월 기준 서울 시내 자치구 24곳에서 활동하는 65세 이상 폐지수집 노인 2,417명에 대해 실태 조사한 결과 월 10만 원 미만으로 돈을 번다는 응답자는 51.9%에 달했습니다.

법도 법이지만 범칙금 규모가 월 수익 절반 정도에 이르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손수레를 끌고 도로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폐지를 주워 하루 2~3,000원 버는 수준에서 벌금 3만 원은 상상 이상의 고통인 셈입니다.


한 사거리에 폐지 손수레가 인도와 차도에 걸쳐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한 사거리에 폐지 손수레가 인도와 차도에 걸쳐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폐지 줍는 노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은 더 열악합니다. 서울 한 번화가서 만난 70대 노인은 "벌금 몇만 원 맞으면 아예 이 일을 할 수 없다"면서 "법이 이 수레를 차라고 말하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나"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차들이 손수레 보면 알아서 피해 다닌다"면서도 '그래도 사고가 나면 어쩌나'라는 말에는 "별수 있나, 그냥 그런 거지"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보통 폐지 손수레는 인도에 딱 붙어서 다닙니다. 보통 가게에서 폐지를 가로등, 가로수에 내놓기 때문인데요. 대낮에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도 이 수레를 보고 방어운전을 하는 등 잘 비켜 갑니다.


문제는 주로 한밤이나 새벽 시간대입니다. 느린 속도로 무거운 수레를 끌다 보니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됩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3년간(2016~2018년) 18명이 숨졌습니다. 2018년에만 노인 6명이 폐지를 줍다 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4명, 2017년 8명이 숨졌고 사망사고만 집계에 잡히는 것을 고려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크고 작은 부상도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인들은 심리적인 고통도 호소합니다. 폐지를 줍는 또 다른 60대 노인은 "한번은 뒤에서 크게 빵빵거리는데, 그 소리가 계속 생각난다"면서 "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조심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다 시끄럽고 스트레스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폐지를 줍는 과정에서 차량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한 심리에서 비롯한 하소연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회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2017년 11월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되도록 법 개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도로교통법 개정에 나선 의원들은 "손수레의 보도 통행을 허용할 경우 보행자 불편을 유발하거나 경미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인 데 반해 차도로 통행하면 차량 흐름을 방해하고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한 사거리에서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은 노인이 힘겹게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서울 중구 을지로 한 사거리에서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은 노인이 힘겹게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그렇다면 시민들의 의견은 어떠할까요. 인도로 다니는 것이 오히려 노인들 처지에서 불편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3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인도의 경우 도로와 달리 경사도 있을 수 있고 여러모로 수레를 끌기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부 보행자들은 (폐지 수거 노인) 그분들에게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많으니 보행자들이 조금 불편해도 이분들을 인도로 다니게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4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차에 치이지 않는 것 아닙니까"라며 "(보행자인) 우리가 불편해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루빨리 관련 제도가 바뀌어서 이분들이 마음 놓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노인들은 입을 모아 안전도 좋지만, 자신들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70대 노인은 "그냥 폐지나 주워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괜히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불편할 것 같다"면서 연신 미안함을 나타냈습니다. 이어 "차 사고를 내는 사람들도 일부러 그러겠느냐"라면서 "우리가 조금 더 주위를 잘 보고 다니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노인은 "노년에 이 사회에 자꾸 뭔가를 요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그냥 아무 일도 없이 무엇이든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짧게 말했습니다.


전문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당부했습니다. 한 사회복지 관계자는 "(수년 전에) 국회에서도 이미 관련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만큼, 법 개정이 늦는다면 일단 지자체별로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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