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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트렌치코트' 상징된 비결은 [히든業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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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1856년 창립된 영국 대표 명품 브랜드
고유한 체크무늬·트렌치코트로 유명
'디지털 기술' 사랑한 버버리

지난 2월17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AW쇼.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지난 2월17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AW쇼.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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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베이지톤 트렌치코트, 체크 무늬 목도리….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변하지 않는 고전적인 디자인은 시대가 바뀌어도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매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자연스레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떠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버버리는 어떻게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됐을까.

영국군에 이어 오드리 헵번도 사랑한 버버리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 (Thomas Burberry). 사진=버버리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 (Thomas Burberry). 사진=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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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는 가장 영국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면서도 연령대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오래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꼽힌다. 특히, 1856년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창립한 버버리는 현재 '클래식 트렌치코트의 상징'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 역사는 그가 제작한 한 원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직물점에서 일하던 토마스 버버리는 1856년 영국 남부 햄프셔 베이싱스토크에 자신의 상점을 열게 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 날씨 탓에 방수 기능이 있는 외투의 수요가 크다는 것을 알았던 그는 직접 소재 개발에 나서는 등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1879년 그는 '개버딘(gabardine)'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냈다. 이 원단은 무겁고 거칠었던 기존 기능성 소재와는 달리 방수기능이 있으면서도 가벼워 그 활용도가 뛰어났다.


이후 1888년 개버딘으로 특허를 획득한 토마스 버버리는 이를 활용한 등산복과 낚시복, 캠핑 텐트 등 아웃도어 제품들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버버리는 1912년 개버딘 천을 이용해 만든 '타이로켄(tielocken)' 코트를 내놓는다. 단추 없이 벨트로 코트를 여미는 것이 특징인 이 옷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추위와 비바람에 떨었던 영국군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이에 영향을 받아 이 코트는 훗날 참호(Trench·야전에서 몸을 숨기면서 적과 싸우기 위하여 방어선을 따라 판 구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버버리의 상징적인 아이템이 됐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영국군을 비롯한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었다. 인기를 이어가던 도중 1961년 개봉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과 영국 왕실의 다이애나비 등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착용하면서 그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1990년대, '시련의 시기' 맞은 버버리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착용한 여성들. 사진=버버리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착용한 여성들. 사진=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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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1990년대 버버리는 지나친 대중화로 명품 브랜드로서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물론, 기성세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 탓에 젊은 소비층은 버버리라는 브랜드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에 버버리는 브랜드의 성장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게 된다. 고민을 이어가던 도중, 1999년 1월 'BURBERRYS'였던 브랜드 이름을 'BURBERRY'로 고쳤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브랜드 혁신을 위해 2001년 5월, 버버리 측은 구찌(Gucci)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를 영입하여 디자인을 맡기게 된다.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전통을 잘 살리면서도 금속 장식, 메탈릭한 가죽 등 새로운 소재를 접목했고, 여기에 영국 특유의 펑크(Punk) 문화를 잘 배합하여 한층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젊은 버버리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 덕분에 1990년대 하락세를 보이던 버버리는 2000년대 들어 성공적으로 부활했고, 그 업적을 인정받은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2014년 4월부터 버버리의 CEO로 겸임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 활용해 '밀레니얼 세대' 사로잡은 버버리
지난 7월 버버리 소속 직원들이 집 앞에서 촬영해 올린 사진. 사진=버버리

지난 7월 버버리 소속 직원들이 집 앞에서 촬영해 올린 사진. 사진=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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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는 명품 브랜드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브랜드 중 하나다.


버버리가 디지털 기업으로서의 변화를 시도한 것은 2006년 안젤라 아렌츠 전 버버리 최고경영자가 부임한 이후다. 그는 당시 버버리를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재정립했다. 안젤라는 명품 브랜드가 추구하는 '희소성'보다 '럭셔리 민주주의'에 가치를 두고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그는 버버리를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키우기 위해 제품과 마케팅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확립해 나갔다.


이 같은 과감한 시도는 다양한 방면에서 드러난다. 버버리는 2009년 9월 런던에서 열린 패션쇼를 온라인 채널을 통해 생중계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1억 명이 동시에 패션쇼를 관람할 수 있었고, 당시 해외 언론들은 "패션업계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열렸던 쇼가 대중화됐다"고 평가하며 "버버리가 패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버버리는 '아트 오브 더 트렌치'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형식의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해당 사이트는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광고 캠페인에 디지털 인터랙티브(Digital Interactive)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이 기술을 활용해 광고 캠페인에 등장하는 제품들을 확대, 회전할 수 있었다. 온라인상에서도 마치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실현한 셈이다.


지난 7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이 자제되자 버버리 소속 직원들이 집 앞에서 직접 새 컬렉션 라인을 촬영해 올리는 이른바 '비대면' 화보 촬영 콘셉트로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하기도 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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