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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⑤신도시 개발, 그리고 호황의 그림자

최종수정 2020.09.01 15:34 기사입력 2020.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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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멘트산업사

건설 중인 일산 신도시 전경.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건설 중인 일산 신도시 전경.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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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한국은 연간 6000여만톤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12위의 시멘트 대국이다. 시멘트 기술면에서도 1980년대부터 해외에 생산기술을 수출할 만큼 시멘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한국 시멘트산업의 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난 60~70년대 경제발전기 국가기간산업의 역할을 다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환경을 망치는 공해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시멘트산업은 친환경산업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본지는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 시멘트산업의 역사를 10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편집자주]


시멘트 업계는 1990년부터 연중 수급난이 계속되는 과열 분위기 속에서도 '97년 말까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 경기호황에 따른 설비투자와 주택의 증가, 올림픽 관련 마무리공사, 대단위 아파트단지 건설 등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호황은 계속됐다.

1991년 국내 수요는 4542만 톤을 기록함으로써 1인당 시멘트 소비량이 1톤에 이르렀고 1995년에는 국민 1인당 시멘트소비량이 무려 1267kg으로 유럽 등 선진국보다도 2배정도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쌍용양회는 시멘트와 시멘트 관련제품을 1조원 이상 판매하는 쾌거를 올렸다. 동양시멘트(現 삼표시멘트)도 누적 총생산량 1억 톤을 돌파했다. 시멘트 1억톤은 분당의 아파트단지를 100개나 건설할 수 있고, 40kg짜리 포장시멘트로는 지구를 31바퀴나 감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97년 말에는 1인당 소비량이 1.5톤에 이르러 최고 정점을 찍게 된다. 생산량기준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하는 등 시멘트 산업의 최고 전성기였다.

1990년 11월 25일 동양시멘트는 연산 800만 톤 시대를 열었다. 사진은 삼척공장 800만 톤 준공 기념식.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1990년 11월 25일 동양시멘트는 연산 800만 톤 시대를 열었다. 사진은 삼척공장 800만 톤 준공 기념식.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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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하반기 이후부터 시멘트 내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더니 올림픽이 끝난 이후 1989년 말에는 상황이 더욱 긴박해졌다. 당시 계속되는 경기호황에 따른 설비투자 및 주택 증가, 올림픽 관련 마무리공사, 대단위 아파트단지건설 등 대규모 공사가 유지돼 89년도 수요는 전년대비 7.7% 증가한 2820만 톤을 기록했다.

이에 시멘트업계는 90년도에 밀어닥칠 수요에 대비해 가동률을 최대한 높이고 겨울철 설비보수 기간을 단축하는 등 비상생산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해 내지 못했으며 결국 정부도 킬른(시멘트 생산설비) 신설을 허가했다.


1988년 2500만 톤에서 연평균 8-10%씩 증가했던 국내시멘트 수요는 92-93년에는 3500만 톤으로 피크에 달했으며, 거기에 수출 500만 톤을 합쳐 대략 4000만 톤의 수요를 예측했다. 그 이후에는 수요가 점차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1인당 시멘트소비량은 740kg을 피크로 점차 줄었음을 상기하면 국내수요도 3500만 톤이 최대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당시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증설사업이 완료됐던 '92년에는 생산능력이 무려 5000만 톤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시기 시멘트업계는 특수시멘트, 고강도콘크리트 파일, 드라이 모르타르 등 시멘트 관련 2차 상품의 고급화, 다양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수 시멘트인 슬래그시멘트의 본격적인 생산도 이루어졌다.

1990년대 초반 시멘트 수출 하역 모습.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1990년대 초반 시멘트 수출 하역 모습.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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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가가치의 2차 제품 시장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특수기능 시멘트의 신제품 개발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렇듯 활발한 사업다각화의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 시멘트 업계는 공급과잉의 시기를 뛰어넘어 IMF의 환란 속에서도 시멘트 산업의 명맥을 건실히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한국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경제 성장기에 우리나라 중추 산업의 하나였던 시멘트산업의 영광은 1997년까지였다"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시멘트 산업은 생산능력 세계 7위, 수출 세계 6위에 이를 정도로 성장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를 정도였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IMF 외환위기는 시멘트업계를 빈사상태로 몰고 갔다"고 진단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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