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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산책] 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 - 위로받고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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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바로 옆쪽에 놓인 매대. 책방운영위원회 '꼴키퍼' 선정 추천도서를 진열하는 '꼴픽'과 '비혼아이콘' 코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입구 바로 옆쪽에 놓인 매대. 책방운영위원회 '꼴키퍼' 선정 추천도서를 진열하는 '꼴픽'과 '비혼아이콘' 코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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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정의했다. '혐오의 시대'라는 말이 횡행할 만큼 특정 집단을 향한 폭력과 혐오 표현이 쉽게 쏟아지는 요즘, 카프카의 말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내재된 편견과 혐오를 깨기 위해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페미니즘, 성 소수자 인권을 다룬 서적에 목마른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10분 거리인 아파트 단지에서 세탁소를 지나면 상가 1층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방문객을 반기는 곳, '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이다. 무지개색 옷을 입은 작은 간판을 보고 어떤 책방인지 짐작을 할 수도 있겠다. 지난달 13일 오후 2시쯤 이곳을 찾으며 만난 방문객은 "이 공간에 자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나를 바꾼 페미니즘. 세상을 바꾼 네트워크'라는 문구가 적힌 큼지막한 현수막으로 장식된 벽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외벽이 유리인 탓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책방은 언뜻 보면 카페 같기도 하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 한쪽을 차지한 서가와 추천 서적이 쌓인 매대가 보인다. 특히 여성 방송인 그림을 세워 둔 '비혼 아이콘' 코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가 운영하는 이 책방은 몇 가지 포부와 현실적인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탄생했다. 단체 사무실로 쓰이던 이곳은 2017년 11월부터 책방 역할도 겸하고 있다. 책방운영위원회 '꼴키퍼' 멤버인 '잇을'과 '시엘'은 "마침 몇 차례 출판 경험이 있던 단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바깥을 향해 외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벽 한쪽을 차지한 책장에는 페미니즘뿐 아니라 성소수자, 동물권, 장애인 인권 등을 다룬 출간물이 가득하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벽 한쪽을 차지한 책장에는 페미니즘뿐 아니라 성소수자, 동물권, 장애인 인권 등을 다룬 출간물이 가득하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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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꼴'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잇을은 "'다양한 차이가 여성주의 운동을 풍성하고 단단하게 한다'라는 것이 언니네트워크가 얘기해온 여성주의 운동이었다"며 "꼴이라는 것도 다양한 모양새를 의미한다. 각자가 지닌 정체성이나 조건일 수도 있고 위치일 수도 있다. 다양한 꼴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하자는 지향점이 담겼다"고 답했다. 특히 꼴이라는 이름은, 언니네트워크가 출판한 잡지 '페+ㄻ'과 붙어 '꼴페+ㄻ'이 된다. 비하ㆍ모욕의 표현으로 쓰이던 '꼴페미'라는 단어를 전복시켜 만든 것이다. 잇을은 "예쁜 소리는 아니지만 좋지 않은 어감을 극복해가는 운동을 한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공간이 좁아 출판물 하나당 1~2권씩 입고되긴 하나, 다양한 서적을 구비한 것이 이 책방의 특징이다.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가치가 '다양성'인 만큼 페미니즘뿐 아니라 성 소수자, 동물권, 장애인 인권 등을 다룬 출간물이 서가를 가득 채웠다. 대형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책장 곳곳에 자리를 차지한다. 입고되는 책은 꼴키퍼들의 논의를 통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가의 책들은 책방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꼴키퍼들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인 '꼴픽'도 마찬가지다. 잇을은 "입고해서 매대에 놓은 책으로 생각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벽 한편에는 필사를 위한 책상도 마련됐다. 다른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잇을은 "이곳에 조금 더 편하게 머물다 가도록 할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서점 한 켠에 마련된 필사공간/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서점 한 켠에 마련된 필사공간/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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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문을 연 동안에는 오며 가며 편하게 들러 책을 읽고, 쓰고, 머물다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책방에 꼭 가고야 말겠다'라는 목표를 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을 지나다 "여기 혹시 서점인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와서 자녀를 위한 어린이 서적이나 그림책을 같이 보고 사가기도 하고, 인근 주민들이 들어와 페미니즘 서적을 추천받아가는 일도 적지 않단다. 꼴키퍼들은 인근 다른 서점과 소상공인을 연결하는 '동네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책방을 들렀다 다른 곳도 찾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차원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으나 멈추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책방 꼴은 오픈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받은 만큼 다수의 응원과 지지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시엘은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이곳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편안한 마음으로 들러 즐겁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책방이 존재하길 바란다"며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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