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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마윈과 이민화의 퇴장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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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마윈과 이민화의 퇴장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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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걸출한 벤처 영웅이 비슷한 시기에 무대 뒤로 퇴장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은 9월10일 항저우에 위치한 알리바바 본사에서 스스로 최고경영자 지위에서 내려왔다. 정확히 20년 전 창업한 알리바바는 이제 약 550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기록하고 있고, 전자상거래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신산업 영역을 아우르는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마윈 회장은 이날 직원 수만명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You raise me up'을 직접 부르며 퇴임 이후에는 교육 및 공익활동으로 중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퇴장이다. 그로부터 한 달 전 대한민국 벤처의 개척자이자 메디슨 창업자인 이민화 회장이 갑작스레 영면했다. 1985년, 32살의 나이로 창업한 메디슨은 기술력과 도전정신으로 세계시장 석권을 꿈꿨던 전형적 벤처기업이었다. 비록 그 도전 자체는 미완성으로 막을 내렸으나 그로 인해 수많은 의료벤처가 창업했고, 그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벤처인들은 지금도 일선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그는 벤처기업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만 않고 직접 대한민국 벤처생태계 조성에 앞장섰고 끊임없이 미래를 지향하며 벤처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해왔다. 아마도 생전에 그가 그토록 주창했던 기업가정신의 발현이리라. 중국의 마윈 회장과 한국의 이민화 회장,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명의 기업인이지만 삶의 궤적은 의외로 닮아있다. 이들은 소위 흙수저 출신으로 30대 초반의 나이에 벤처창업에 뛰어들었으며 끊임없이 미래와 소통하며 현실의 맨바닥에서 도전과 개척정신을 실천했다. 소유자가 아닌 경영자의 역할에 충실했고, 알리바바와 메디슨이라는 단일기업의 혁신이 생태계 전체로 확산하길 소망했다. 나란히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는 것과 한때 정부기관에 몸 담았다가 스스로 박차고 나온 공통된 이력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안타깝게도 이 두 사람이 부딪히고 극복해야했을 제도적ㆍ문화적 장벽의 높이는 매우 상이했다. 잘 알려진 대로 마윈 회장은 여러 번의 창업 실패를 경험한 후 알리바바를 설립했고, 스스로도 다양한 실패의 경험이 훗날 훌륭한 자산이 되었음을 자주 언급한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마윈 회장을 먼저 높게 평가해야겠으나, 한국 벤처생태계 입장에서는 수차례의 실패에도 다시 창업할 수 있는 중국의 토양이 신기하기만 하다. 금융권의 연대보증은 어떻게 해결했을지, 폐업한 법인이 국세를 어떻게 완납했는지, 실패한 경영자에게 어느 금융권이 대출을 해주었고 어떤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감행했을지, 아마도 국내 기업인이라면 이런 의아함을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이민화 회장도 생전에 실패의 자산화를 주창하며 창업안전망 확보를 우리나라 벤처생태계의 핵심적 성공 요인으로 인식했다. 그는 강연에서 "혁신에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다. 정직한 실패 기업인에게 주홍글씨의 신용불량 딱지를 붙이면, 청년들은 창업보다는 공무원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2002년 자금경색에 의한 메디슨 부도와 대표이사 사임 이후, 그에게는 실패한 경영자라는 주홍글씨가 평생 따라다녔다. 또한 메디슨 대표이사로서 부담했던 금융권 곳곳의 연대보증에 의한 채무는 기업가로서의 그의 재기를 원천봉쇄했고, 최근까지 고인은 이를 매월 분할 상환해왔다고 한다.

정직한 도전의 실패에 대한 우리사회의 경직된 인식과 한번의 실패자를 법과 제도로 꽁꽁 묶어버렸던 비혁신적 금융시스템이 한국판 마윈의 등장을 막아버렸다. 마윈 회장과 이민화 회장을 바라보며 중국과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벤처 창업에 도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미 세계 최고의 벤처생태계를 갖춘 중국에서는 제2, 3의 마윈 회장이 속속 등장할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과연 어떠할까? 창업안전망뿐 아니라 벤처생태계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지 않는다면 요원한 일이다. 마윈 회장이 그의 퇴임식에서 직접 멋지게 불렀던 노래와, 고 이민화 회장의 추도식에서 200여명의 참석자들이 울먹이며 불렀던 '선구자'의 선율이 묘하게 대비된다. 중국이 부럽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경영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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