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②'선풍기 사망'의 비밀과 진실-사람과 기계, 누가 더 문제?[과학을읽다]

최종수정 2019.08.09 12:09 기사입력 2019.08.09 06:30

댓글쓰기

건강한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밤새 선풍기를 켜놓고 자도 사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선풍기 사망' 보도가 나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건강한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밤새 선풍기를 켜놓고 자도 사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선풍기 사망' 보도가 나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우리나라에서는 '선풍기 사망(Fan death)' 사고가 진실인 것처럼 받아 들여지기도 했습니다. "밀폐된 방에서 얼굴을 향해 선풍기를 켜놓은 채 잠을 자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두고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부가 퍼뜨린 속설' 등등 설왕설래가 많았음을 <①'선풍기 사망'의 비밀과 진실-한국이 유일?>편에서 살펴봤습니다.


이런 설왕설래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30대 여성이 대낮에 방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밀폐된 방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자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풍기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망원인이 저체온증이냐, 아니냐를 두고 유족과 보험사가 법정 다툼을 벌였지요.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서로 달라 마지막 대법원의 판단이 어떨지를 두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에어컨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의 판결문은 '선풍기 사망'을 둘러싼 거의 모든 속설과 논란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논거가 명확했습니다.


재판부는 "최근의 의학적 연구와 실험 결과에 의하면 저체온증이란 인체의 심부체온이 35℃ 이하로 낮아지는 증상을 말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람이 사망에 이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심부체온이 8~10℃ 이상씩 낮아져야 하는데 건강한 사람의 경우 단지 선풍기나 에어컨 작동에 따른 표면 냉각만으로는 인체의 심부체온을 위와 같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낮출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선풍기나 에어컨은 산소를 소모하지도 않고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이 사람의 코와 입에 직접 맞닿더라도 호흡은 가능하기 때문에 폐쇄된 공간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산소 부족이나 호흡곤란 등으로 질식사할 가능성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의 이 같이 판결하면서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것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밀폐된 방에서 틀어 놓고 자면 사망한다는 믿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설'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실제로 선풍기나 에어컨에 의해 사망한 법의학적 증례보고는 세계적으로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개입설'이 일부 호사가의 입심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대법원이 확인해준 셈이지요.

대법원은 선풍기나 에어컨 등은 산소를 소모하지 않아 질식 상태를 초래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대법원은 선풍기나 에어컨 등은 산소를 소모하지 않아 질식 상태를 초래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그러면서 재판부는 "선풍기나 에어컨 등은 산소를 소모하지 않아 질식 상태를 초래할 수 없으며, 코와 입에 바람이 직접 닿는다 하더라도 호흡이 가능하므로 공기 부족으로 질식사한다는 것도 물리학적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선풍기 사망'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질식'과 '저체온증'에 대한 과학적 논리가 성립되지 않음을 이미 10여년 전에 대법원이 확인해준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동안의 '선풍기 사망' 보도는 모두 오보일까요? 현장에서 변사체를 발견·검증했던 경찰과 소방관 등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선풍기 사망으로 추정되는 변사체의 부검에 참여했던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사망자는 심장질환이나 알코올중독 등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앞서 대법원이 '에어컨에 의한 사망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경우는 유족이 부검을 거부했기 때문에 사망자가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도로변에서 음주운전하던 차에 치어 사망했다면 사망원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주요 장기 훼손' 등으로 기록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찰이나 언론이 '밀폐된 공간', '질식의 징후를 보이는 변사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등의 조건이 갖춰진 현장을 보면 '선풍기 사망'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이 아닐까요?


만약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일치했다면, 그런 식으로 사건을 몰아가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적었던 것 아닐까요? 경찰이나 검찰이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지도 않고 사건을 처리했거나, 언론은 사실에 대한 확인도 하지않고 흥미 위주로 보도했다면 '한국에만 있는 선풍기 사망'에 대한 경찰과 검찰, 언론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이와 달리 '선풍기 사망'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일부 법의학자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얼굴로 향하게 하면 얼굴 쪽은 진공상태와 비슷하게 된다. 특히 술을 마시고 오랜 시간 얼굴을 향해 선풍기 바람을 쏘이면 서서히 산소가 희박해져 의식이 아른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질식사나 저체온증이 사인이 아니고 "심장마비나 뇌졸중, 호흡곤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선풍기 사망'은 근거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일부는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선풍기 사망'은 근거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일부는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어쨌거나 가능성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경우는 자신의 신체를 제대로 가눌 수 없거나 이상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아기는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선풍기 바람을 정면으로 쐬게 되면 원활하게 숨을 쉴 수 없다고 합니다.


또 갓난아기의 옷을 벗긴 채 장시간 선풍기 바람을 쐬게 하면 아기 몸속의 수분이 증발해 탈수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감기에 걸려 체력이 떨어진 어린 아이가 장시간 선풍기 바람에 노출되면 체온이 떨어져 순환장애로 발전해 호흡이 곤란해지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성인의 경우도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이 장시간 선풍기를 켜놓고 잠을 자면 위험할 수도 있고, 과음 후 선풍기를 켜놓고 잔다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선풍기 때문이 아니라 심장질환 등이 사인이 되겠지요.


결국 몸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선풍기를 켜놓고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은 위험을 부르는 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더라도 창문을 열어 놓고, 회전을 시키거나 타이머를 작동시켜 한 시간 정도 지나 꺼지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문을 모두 닫고 밤새 선풍기를 켜놓고 자도 사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선풍기나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려 출근하거나 연차를 쓰는 동료가 달갑지는 않으시죠? 선풍기나 에어컨이 문제일까요? 사람이 문제일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