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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폐간잡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당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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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잡지의 창간 법칙 중 3T가 있다. 창간 시기(Time), 매체 내용(Theme), 독자층(Target)을 고려해 잡지 창간의 주요 뼈대를 세우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를 기폭제로 우리 사회 전반은 숨통이 트였다. 출판 잡지, 신문 분야에도 자율과 변혁의 바람이 불어 잡지와 신문의 창간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뜻과 사람을 모으면 미풍양속과 공공질서를 해치거나 이적 표현물이 아니라면 어떤 잡지라도 발행이 가능했고, 언론대기업이나 가능했던 신문 창간도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이에 따라 잡지계에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구현해 내는 다양한 '미디어 보이스'의 출현과 활약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몇몇 대형 종합여성지들이 잡지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시대에서 '전문지 시대'라고 불리는 백가쟁명의 시대가 열렸다. 10만, 20만부는 팔려야 하고 상업광고가 전체 면수의 30% 이상은 되어야 존속이 가능하던 것에서 1만부 정도의 판매부수와 그 수에 맞먹는 충성 독자를 거느리면 특정 타깃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는 전문지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을 수놓은 전문지 시대에서 90년대 중반 '엘르', '마리끌레르'의 창간으로 시작된 '판권 잡지' '명품 잡지' 시대의 도래, 2000년대 초반 온라인 매체의 등장에 따른 온오프 하이브리드 매체의 출현 등,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잡지출판계는 우리 사회의 격변에 버금가는 진통과 변화를 겪었다.


매체의 다양성만큼이나 3T를 정하는 일도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의가 필요했다. 시장과 독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잡지 외형에서는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판형과 활자가 커지고, 내용에서는 요리ㆍ패션ㆍ인테리어 같은 화보성 기획이 독자들의 구매력을 자극했다. 아울러 독자들은 냉혹할 정도로 매체 선택에 신중했다. 신선하지 않은 기획, 충실하지 않은 취재, 특화되지 않은 편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매체들은 인정사정없이 외면했다. '똑똑한 독자들의 시대'가 되면서 그만큼 잡지 편집자들의 업무강도는 세졌고 특히 매체 수명도 10년 이상을 구가하는 장수 매체가 드물어졌다.

자신만의 개성과 특화된 편집 철학을 지니지 못한 매체는, 독자적 기획의 결여, 독자와의 공감 부족, 시대정신의 흐름에 발맞춘 변혁의 부재 등 '엔트로피의 증가'로 고작 2, 3년을 못 버티고 폐간이라는 '열평형 상태'가 되곤 했다.


다소 비약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어제 오늘을 지켜보노라면, 무수히 명멸한 지난 시대의 폐간잡지를 떠올리게 된다. 독자(유권자)들이 얼마나 냉혹하고 명철한데 신선한 기획과 공감(정당간의 정책대결, 경청을 통한 민의 수렴)에 열정을 쏟는 대신 품격 낮은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국익과 민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회 문까지 닫아 건 채 내년 총선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것을 보아서이다.


보수든 중도 개혁이든 진보정당이든 정파의 이념과 지향점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가치 기준이 국익과 국민 행복을 위한 동반자적 경쟁과 조율, 합의와 협력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잊을 때, 정당 내의 엔트로피는 치명적 상태에 다다를 것이다. 정당정치는 동호인끼리 적당량을 찍어 돌려보는 동호인 잡지가 아니다. 시대정신과 역사인식이라는 씨줄에 대중적 재미와 유익성이라는 날줄을 짜나가며 독자들에게 구애하는 유가잡지와 다름 아니다. 독자가 냉소하고 외면하는 잡지의 수명은 오래가지 않는다. 만약 정당이 그렇다면 그 정당의 한계수명은 내년 총선까지로 보는 것이 틀리지 않는 예단일 것이다.


정희성 시인ㆍ제주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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