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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공직 기강을 잡겠다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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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집권 여당과 관료사회 간의 불신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다" "정부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는 말을 주고 받는가 하면 대통령이 직접 공직기강 다지기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직사회를 향해 "정부 출범 당시의 초심과 열정을 지켜 달라"며 "정책이 국민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 내 삶이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분위기 일신을 위해 대규모 차관급 인사를 단행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집권 중반기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사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이미 일상화됐다. 공무원들에게는 벌써 7번째 반복되는 경험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확실히 안다. 첫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공무원 기강잡기'라는 것이다. 공무원의 '영혼'을 놓고 시비를 건다. 새 정부 정책에 토를 달면 당장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된다. 영혼이 없다? 시체라는 말이다. 시체가 되지 않으려면 새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둘째는 3년 차가 되면 성과를 채근한다. 5년 단임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대통령들은 초조해진다. 자신의 이상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어떤 정책도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예컨대 외국인투자에 혜택을 준다고 당장 돈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는다. 청와대가 아무리 성과를 강조해도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하다.


함께 따라 오는 게 있다. 정책홍보다. 국민들이 정부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니 홍보하라는 것이다. 부총리까지 지낸 한 전직관료가 이런 말을 했다. "콘텐츠가 좋으면 홍보는 저절로 된다." 청와대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와 국민이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게 문제다. 이 정도면 눈치 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다른 정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공무원과의 역학관계는 더 악화됐다. 적폐청산의 부작용이다. 이전 정부 정책에 '보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었던 공무원들을 문책하거나 밀어냈다. 실국장급 고위공무원들도 억울한데 과장, 사무관 등 실무 공무원에까지 칼날을 겨누었다. 3년 후 정부가 바뀌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불안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비망록 작성과 녹음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다.

장담하건데 이 시점에서 이러한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늉은 내겠지만 소위 영혼은 따로 논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공직은 무한하다. 3년은 순간이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청와대 실장, 비서관, 장차관 들이 훗날 정책감사나 정권교체에 따른 문책이 있을 것에 대비해 실무자들에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각서를 써 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진정한 테크노크라트, 즉 기술관료가 돼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기술관료에게 정책의 방향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정치관료의 영역이다. 기술관료는 주어진 정책과제를 가장 과학적, 효율적,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역할에만 집중한다. 4대강에 보를 건설한 공무원이 보를 해체시키는 일에도 참여할 수 있는 게 기술관료의 특징이다.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면 가장 최선의 집행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게 기술관료의 역할이다. 이들에게 이념이나 철학은 필요 없다. 기술관료의 영혼은 정책의 색깔이 아니라 정책의 완결성이다.


3년 내 성과를 내고 싶은가? 공무원들의 기술관료로서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라. 영혼을 겁박하지 말고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도와라. 정권 초기 불이익을 받은 관료들을 원상회복시키고, 보복의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주어라. 감사원의 감사도 돈과 관련한 부정행위가 아닌 한 정책감사는 3년간 실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정도 해야 공직사회에서 움직임이 감지될 것이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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