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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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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9일, 4월12일, 6월30일. 이 세 날짜가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100년 뒤 영국의 학생들이 치르는 역사 시험에 나온 질문이라고 하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학생들을 위해 힌트를 하나 준다. 2019년의 일이다. 그러면 답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혼란과 불확실성. 영토분쟁의 재시작. 위대한 영국을 향한 재출발. 영국 쇠퇴의 시작.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앞의 두 가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뒤의 세 가지 답변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3년 전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EU를 떠나기로 결정했다(51.8%의 찬성). 캐머런 전 총리의 정치적 계산으로 시작된 국민투표였기에 모두들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발상지답게 '국민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3월29일 영국은 예정대로 EU를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사상 최대의 표차로 부결되었다. 4월12일로 연기되다가 이제 6월30일로 연기를 요청한다. EU는 아예 1년의 유예기간을 주려는 계획까지 제시했다.


도대체 이게 뭔가? EU를 떠나 경제주권을 되찾고, 난민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목도한 것은 금융업과 제조업의 쇠퇴(영국주재 기업의 해외 이동), 500억달러에 달하는 탈퇴비용, 영국 파운드화의 불안정이다. 더 기가 찬 것은 지브롤터와 북아일랜드 문제가 다시 터져 나온 것이다. EU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따로 살림을 차리려니 국경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북 아일랜드 문제는 영국의 오랜 상처다. 영국 하원에서 EU 탈퇴안이 부결을 거듭한 것도 이 문제를 다루는 소위 '백스톱(2020년까지 별도의 국경을 설치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항 때문이다.


"우리는 몰랐다." 심지어는 브렉시트를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터져 나온다. 문제는 이런 의견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영국 의회, 더 크게는 정치권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시 국민투표에 맡기자는 목소리도 높다. 영국 하원의 의향투표는 어느 하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청원은 이미 400만 건을 넘었다. 그럴 수도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국민투표에 의해 브렉시트를 철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EU도 내심 이것을 바라면서, 영국이 브렉시트 입장을 바꾸더라도 EU의 규정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까지 이미 밝히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 번 내린 결정을 다시 국민투표로 번복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에 어긋나는 대중영합주의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국민투표에 의해 내린 결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번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 정말 어렵다.

100년 뒤 영국의 최근세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는 2016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기술할지 모른다. '그런 엄청난 정치 사회적 혼란을 겪었으면서도 영국은 끝내 메이 총리가 애초에 제시한 EU 탈퇴 안을 노동당의 협조하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소프트한 브렉시트안(案)은 향후 영국의 경제적 번영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경제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 사태를 계기로 영국은 자신의 정치제도에 대한 자부심을 더 이상 가지기 어렵게 되었다. 브렉시트로 영국은 경제에 큰 혼란과 손실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의 자부심에 남긴 상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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