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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북위 17°

최종수정 2019.03.08 07:00 기사입력 2019.03.08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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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허진석 부국장

베트남전쟁은 1955년 11월1일에 시작되어 1975년 4월30일에 끝났다.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ㆍ북베트남 vs 남베트남 정부군ㆍ미국. 대한민국의 군대도 남베트남(정확히는 미군) 편에 서서 싸웠다. 전쟁은 미군이 철수하고 남베트남 정부가 항복하면서 종결되었다. 베트남은 1976년 7월2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되었다.


베트남전쟁은 프랑스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1946~1954년)의 연장선에 있다. 프랑스와 싸운 전쟁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전쟁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한다. 두 전쟁의 출발점에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이 있다. 이를 극복하고 독립과 통일을 달성했기에 베트남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이 명료하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해 1945년 10월 남부를 점령하고 1946년 11월 북부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프랑스군 9만5000명과 베트남인 130만이 희생됐다. 전쟁은 1954년 7월21일 제네바협정이 조인되면서 끝났다. 회담의 결과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다. 남의 땅에 금 긋기는 제국주의의 상습이며 고질병이다.


베트남전쟁은 '남침전쟁'이다. 북베트남은 제네바협정에 따라 1956년에 실시하기로 한 남북통일선거를 남베트남 정권이 거부하자 무력에 호소했다.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던 미국은 자국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전쟁에 뛰어든다. 1964년 8월7일 북베트남을 폭격한 이후 1968년까지 폭탄을 100만 톤이나 퍼부었다. 미국 공군 참모총장 커티스 레메이는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으르렁거렸다.


미국은 북베트남군이 미국 공군이 주둔한 비행장을 공격하자 기지를 방어한다며 전투 부대까지 보냈다. 1965년 오늘 미국 해병대 3500명이 베트남에 상륙했다. 그러자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치민이 경고하였다. "(미국이) 20년 동안 전쟁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20년 동안 전쟁을 할 것이다. 미국이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차를 마시며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월남전'과 '월남패망'으로 오랫동안 기억해왔다. 전쟁은 '베트콩', '땅굴', '네이팜탄', '고엽제', '귀신 잡는 해병대' 같은 이미지로 남았다. 우리의 뇌리에는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로버트 드 니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디어 헌터', 말론 브란도와 마틴 쉰이 나오는 '지옥의 묵시록'처럼 대중문화라는 잠재의식으로 쐐기처럼 박혀 있다. 패전국 미국은 '람보' 같은 공상영화를 찍어 그들의 황폐한 내면을 메우려 든다.

베트남전쟁은 종전 44주년을 앞두었다. 총칼로써 죽고 죽인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1992년 12월23일 국교를 수립해 구원(舊怨)을 지워나가고 있다. 두 나라는 중요한 교역국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국제결혼하여 두 나라에 가족을 두고 산다. 베트남의 축구대표팀을 대한민국의 감독이 이끌고 있다. 지난달에는 북베트남의 심장부였던 하노이에서 미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회담을 했다.


신이 역사를 주조한다면 그 뜻을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다만 선이 악을 이기고, 민족의 염원이 제국의 폭력과 이기심을 끝내 넘어설 수 있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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