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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법부, 민주사회 보루로 거듭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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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아니라 개판, 판사가 아니라 대법원장의 개."


지난 주말 광화문 인근에서 개최된 사법부 규탄집회에 등장한 용어들이다. 심지어 성창호 판사를 일컬어 "유신헌법이 선포되던 해에 태어났으니 유신의 개로 불리는 것이 어울린다"며 법관이기에 앞서 민주사회의 개인에 대해 극한 인권 모독성 발언도 거침없이 나왔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이라는 참담한 현실에 한껏 몸을 움츠리던 김명수 대법원장도 참다 못해 "도를 넘는 표현이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 표현했다. 풍랑을 맞은 사법부호(號)의 선장으로 후배 법관의 따가운 눈총과 정치권의 거센 비난에 김 대법원장의 솔직한 심정은 광화문에서 목 놓아 소리치며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IT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 사회는 각종 정보가 넘친다. 이와 함께 성장하는 독초인 근거 없는 '지라시'도 많기에 항상 갈등은 존재하고 검찰에 고소한 이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흑백이 가려지는 모습을 익숙하게 접하게 된다.


검찰과 법원, 법조인이라는 공통의 단어로 표현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신뢰감을 잃은 지는 이미 상당 시간이 지났다. 대한민국 사회 엘리트의 상징인 사법고시에 합격해 타인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재단하던 이들의 추락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아마 이들이 법조인의 길에 첫걸음을 디뎠을 때 강의실에서 가장 흔하게 들은 칸트의 교훈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거쳐 한때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낸 잘나가던(?) 검사 김기춘은 국정농단의 주구가 돼 법적 심판을 받고 있고 전직 대법원장 역시 수의를 입고 사법 심판대에 섰다.

최근 법조인 출신의 한 정치인은 법적으로 규명된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의 주인공이 돼 보수 재건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소속된 정당으로부터도 윤리위원회에 제소되기에 이르렀으니 법조인이 사회적 존경을 받는 지도층이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는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 일부 정치적 법조인의 행태만으로 전체 법조인을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가 너무나 안쓰럽다. 대한민국의 사법기관(검찰 포함)에는 목소리 큰 정치 성향의 법조인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소중한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더 많기에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


성 판사에 대한 비난이 워낙 거세기에 필자도 170쪽 분량의 판결문을 읽어보았다. 법관으로서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유죄 판결로 그가 과거에 했던 국정농단 관련 추상적 판결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및 공천 개입에 대한 징역 8년 선고는 사회 한쪽의 거센 목소리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주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존중하기에 이해 당사자 간 다툼은 상존하고 우리 사회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삼권 분립의 원칙 아래 사법부에 권한을 위임했다. 사법부도 사람으로 이뤄졌기에 오판할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 번 심판을 받을 권리도 있다.


민주사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는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감정적 비난보다는 냉정을 찾아 사법부가 잘못됐으면 헌법상 명시된 법적 절차에 따라 법관을 탄핵하고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면 상소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418년 전 아테네의 한 동굴에서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는 로마 법률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의 격언을 떠올리며 초연히 독배를 들었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던진 교훈에 대해 생각해볼 시기다.


박관천 객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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