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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카레라이스, 그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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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노란 소스 속에 감자와 당근, 양파, 그리고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깍둑썰어 푹 익힌 후 밥에 얹어 먹는 카레라이스는 내겐 애증의 음식이다. 어머니가 밥을 하기 귀찮을 때마다 한 솥씩 끓여 놨기 때문에 질릴 때까지 먹어야 할 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질려 버리기엔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카레 우동, 카레 돈까스 등 다양한 카레 음식을 먹어 봤지만 어렸을 때 먹은 그 카레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한국인도 카레를 사랑하는 편이지만, 일본인만큼 카레를 사랑하는 민족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국민의 70%가 카레를 사랑하고,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보다도 카레 관련 상품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 카레는 '본고장 카레'와는 엄연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음식 문화 전문작가인 필자는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카레를 먹어 본 후, '카레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카레라이스의 신비를 풀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인도로 떠난 필자는 엄청난 혼란과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당연히 '카레'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인도에는 카레 가루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카레' 역시 달랐다. 인도인들은 고추, 코리앤더, 커민, 펜넬, 시나몬, 육두구, 터메릭 등 다양한 향신료를 빻아 '마살라'라는 가루를 만들어 요리하는데, 마살라를 쓰는 요리는 원칙적으로 모두 카레로 분류된다. 카레의 범위가 넓어도 너무 넓은 것이다.

그를 혼란에서 구원해 준 것은 인도의 카레가 바로 일본으로 전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도와 일본 사이의 연결고리는 바로 영국이다. 계기는 전쟁이었다. 영국은 벵골 지방을 기점으로 점차 인도 지배를 늘려 갔고, 이 과정에서 인도의 카레가 영국으로 전해지게 됐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그때그때 향신료를 조합해 만드는 인도의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결국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몇 개의 향신료를 골라 섞어 카레 가루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카레 가루는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결국 일본으로 건너온다. 본디 인도 태생이었던 카레 요리는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서양 음식'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서양인들을 따라 고기 섭취를 늘리고 양식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카레는 그 선봉장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당근과 양파, 감자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1차 대전이 있었던 다이쇼 시대(1912~1926년)에 군대 요리로 유명해지는 등 현지화 과정을 거치면서 당근과 양파 등이 투입됐다. 그 때만 해도 당근과 양파는 '서양의 것'이었기 때문에, 같이 넣어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현재의 카레 상품과 비슷한 카레 루가 보편화되면서 카레는 이른바 '국민 요리'가 됐다.
이렇게 필자가 재구성한 일본 '국민요리' 카레라이스의 탄생 설화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고서도 '왜 그 많은 서양 음식을 두고 하필 카레였을까' 하는 의문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개항을 통해 영국에서 건너오고, 두 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전국에 퍼졌다지만 그게 꼭 '소울 푸드'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책은 카레가 다양한 모양으로 적응하고 변신하며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해 왔다고 설명하지만 왜 한국이나 중국,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그냥 추측만 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일본인들이 품고 있는 카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과거 내가 어머니의 카레에 대해 품었던 애증과 크게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렸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잊지 못하고 또 찾게 되는 그런 맛 말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그 자식들까지 대를 이어가며 카레 맛에 인이 박여 버린 탓에 이제는 빠져나올 수도 없게 된 것 아닐까.

<카레라이스의 모험/모리에다 다카시 지음/박성민 옮김/눌와/1만3800원>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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