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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북·미 연락사무소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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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역시나였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정체되자 미국의 매파들이 등판했다. 주인공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북 협상에 임하며 대화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매파를 번갈아 활용한다. 이런 면에서 볼턴과 매티스가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반대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는 올 게 왔다는 의미로 들린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대북 정책에서 볼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미친개'라는 별명의 매티스도 렉스 틸러슨 전 국무부 장관과 함께 트럼프 정부의 대북 대화를 지지했었지만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매파로 돌아섰다.
이는 판문점 선언으로 우리 정부가 대북 강경 발언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잃은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경질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대북 강경발언을 종종 했지만 정부 내에서는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운전자를 자청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에 주력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강온 전략은 이미 용도폐기된 상태다. 카드를 다 쓴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유도해야 하지만 좀처럼 간격이 줄어들지 않는다. 어느 쪽의 편을 들어도 난처한 입장이 되기는 매한가지다. 청와대는 다음 달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도 비핵화가 핵심 의제라고 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남북 관계가 북ㆍ미 관계를 선도한다는 현 정부의 방침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쳐 온 경험이다. 남북 관계가 호전됐을 때 북ㆍ미 관계도 같은 방향으로 흘렀음은 과거의 일이다. 지금 미국 백악관의 주인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판을 뒤집을 준비가 돼있다.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취소,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등에서 우리는 충분히 경험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다고 방심하기는 이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개성에 남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남북 협력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오판이다. 문제는 남북이 아니라 북ㆍ미이기 때문이다. 북ㆍ미 간 갈등이 풀리지 않는 한 남북 관계는 꼬인 매듭을 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남북 연락사무소가 아닌 북ㆍ미 연락사무소 개설이 더 급선무다. 북ㆍ미 간에 판문점과 뉴욕 채널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보다 미국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대화를 한다면 북한에 미국이 평화적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얻는 진보된 행보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되돌릴 수 없다고 우려하지만 연락사무소는 언제든 폐쇄할 수 있다. 미국의 부담이 작다.

미국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려고 했던 경험도 있다. 미국은 2008년 조지 부시 정권 때도, 버락 오바마 정권 때도 북한이 핵을 신고하면 그 대가로 연락사무소를 평양에 개설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198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실제로 설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불발됐지만.

조지프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최근 북ㆍ미 간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잘 간파한 제안이다. 북한과의 대화 경험이 풍부한 조지프 윤은 북ㆍ미 간에 근본적 신뢰 관계가 없어 협상이 쉽지 않다며 연락사무소 개설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종전선언을 해도 미국이 잃을 게 없다"고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연락사무소는 이미 효과를 본 경험이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과 맞섰던 중국, 미국에 패전이라는 아픈 경험을 준 베트남과도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며 신뢰를 쌓았고 수교로 이어졌다. 우리 정부도 남북 경협에 속도를 내는 것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볼 때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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