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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의 돛단Book]'밥줄' 빼앗긴 인공지능시대 해법은 재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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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 심화...소수 집중된 부의 사회적 재분배 필요
산업혁명기 교훈 되새기며 사회적 자본 확충에 힘써야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고된 닷새를 보내고 '무(無)노동'의 주말 새벽을 맞았다. 조간을 들추다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의 노조위원장을 인터뷰한 기사에 눈이 갔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전기차는 악마의 신기술"이라고 했다. 엔진과 변속기 공장이 사라지고, 인력이 최대 70%까지 줄어드니 미리 고용보장이 가능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겨레 3월30일자) 그의 고민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하다. 인공 지능 같은 디지털 기술이 득세한 미래는 공포 그 자체다. 사람보다 똑똑해지는 '특이점'을 지난 인공지능이 인류와 펼치는 대결을 담은 서푼짜리 과학소설이 넘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두려움은 내 밥줄을 디지털 기술이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첨단 디지털 기기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수석 편집자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인 라이언 아벤트가 쓴 책 '노동의 미래'는 이같이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극히 제한적인 인력만이 생산에 참여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완벽하게 자동화된 스웨덴의 볼보자동차 공장이나 중국 선전의 생산설비 공장 등 세계 곳곳의 경제, 산업계가 처한 상황을 힌트삼아 노동 과잉의 사회가 변화할 방향을 가늠한다. 저자는 또한 디지털 혁명이 창출할 막대한 사회적 부가 특정한 소수에게 집중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재분배할 것인지를 책의 화두로 삼았다.

◆산업 혁명기를 다시 돌아보라=이 책의 원제는 '인류의 재산(the wealth of humans)'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머리에 "사람은 항상 일을 하며 살아야 하고 그에 따른 수입은 적어도 먹고살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국부론의 한 문장을 소개했다. 스미스는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기에는 생산력의 개선만으로는 개개인의 부를 증진시키지 못한다. 새로운 노동의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그에 따르는 부의 불균형을 해소해야한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을 맞아 산업혁명 당시를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한다. 산업 혁명기에도 디지털 혁명기와 유사한 위기가 있었다. 그때도 신기술이 낳은 부를 독식하는 자본가가 있었고 험한 공장지대에 살며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었다. 하지만 인류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인간다운 삶을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했다. 그 결과 교육, 연금, 의료 복지 등 사회가 개인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를 제도화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두 혁명의 차이는 존재한다. 디지털 혁명기에는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예전보다 더 중요시된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시계공 찰리 채플린이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서서 나사를 조이던 것 같은 단순노동은 사라진다. 자율운행이 운전사를 대체하고 법무보조업무 역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한 번에 검색하는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의료, 금융, 교육 분야에서도 업무의 상당부분을 인공지능이 처리할 것이다. 따라서 금융, IT산업 등에서 고도의 기술을 보유한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한 비숙련 인력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희소성을 대체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들 일반 노동자는 정치권에 기대거나, 앞서 언급한 노조위원장의 말대로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충분한 고용보장 대책을 마련하는데 진력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고도의 기술 인력이나 선제적인 투자로 부를 거머쥔 소수의 승자집단은 산업혁명기의 자본가 못지않게 부를 사회적으로 분배하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앞으로 부자들이 자신의 재화를 이용해 정치적 교섭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봤다.
◆이젠 사회적 재분배를 고려할 때=디지털 혁명기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고도의 기술을 가진 숙련직은 임금이 올라가지만 비숙련 노동자는 임금이 낮아지거나 직장을 잃는다. 부의 양극화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기계가 할 일을 일부러 인간에게 맡기면 생산성이 낮아진다. 숙련 노동자는 기술 고도화로 인한 임금 상승 혜택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노동과 부의 재분배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에 더해 '세계화'에 따른 논의도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산업혁명을 겪으며 부의 분배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해왔던 서구의 국가들보다 양적 성장만을 위해 달려온 한국, 중국 같은 아시아의 신흥 산업국에게 재분배는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들 신흥국은 세계적인 무역 네트워크(이 책에서는 '공급망'이라는 표현을 쓴다)를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부의 재분배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는데 있어선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자본을 현 수준에서 한 단계 더 키워야 향후 고용시장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자본은 의욕과 준법정신 등 사회와 기업의 문화를 포괄적으로 아우른다. 사회와 기업의 성공은 구성원의 교육 수준이나 법 제도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달리 적극적인 사회 구성원의 참여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기업의 성공과 각종 혁신도, 사실은 사회적 자본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인식이 공유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 재화의 재분배도 정당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현실에서 많은 재분배 정책들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국의 금융 완화 정책과 공공 투자, 교육, 노사협정, 기본 소득, 이민 등 기존의 소득 재분배 정책 등이 모두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혹은 개선된 사회ㆍ경제적 재분배 모델을 시도해보자고 권유한다. 또한 가난한 나라 국민을 적극적으로 선진 부국에 수용함으로써 양질의 사회적 자본이 전 세계적으로 고루 전파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인류의 예지를 신뢰하며, 중요한 것은 개방과 평등이라는 희망적인 결론을 내린다. 그는 미래를 두려워 말고 관대해지라고 주문한다. 인류의 관대함이 사회적 재분배를 논의하는 가장 기초적인 토양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라이언 아벤트 지음, 안진환 번역/민음사/2만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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