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예술가 엠마 핵 전시회
[아시아경제 이윤화 인턴기자]붉은 캔버스에 그린 꽃무늬 앞에 노랑머리 앵무새가 앉아 있다. 그런데 한발 더 다가가 자세히 살피면 물감 옷을 입고 눈을 감은 여인이 숨어있다. 검은 눈썹과 입술의 주름, 머리카락까지 틀림없는 사람이다. 호주 예술가 엠마 핵(Emma Hackㆍ44)의 작품이다.
"사진이야? 그림이야? 저 속에 숨은 건 사람이네!"
메이크업을 전공한 엠마 핵은 열여덟 살 때부터 보디페인팅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2002년엔 녹물이 든 벽을 배경으로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린 독일 모델 베루슈카의 작업을 보고 영감을 얻는다. 그때부터 사람의 몸을 벽에 스며들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체를 활용한 카무플라주 작업을 시작했다.
핵은 호주의 패턴 디자이너 플로렌스 브로드허스트의 벽지 무늬를 이용해 첫 시리즈 작품 '월페이퍼(Wallpaer)' 컬렉션을 만들었다. 강재현(45) 전시팀장은 "당시 시그니처 프린트(브로드허스트의 디자인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엠마 핵에게 브로드허스트의 디자인 이용 독점권을 준 것은 작품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기이자 행운이었다"고 설명했다.
엠마 핵의 작업은 매우 긴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먼저 물감을 칠한 캔버스 위에 배경이 될 그림을 그려 넣는다. 두 번째로 캔버스 앞에 모델을 세우고 어깨, 얼굴, 몸 순으로 배경의 무늬와 같은 그림을 그린다. 작업 중간 중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모델과 캔버스 배경이 잘 어우러지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어 작품으로 완성한다. 최소 여덟 시간에서 최대 스무 시간까지 소요된다. 페인팅과 설치미술, 사진까지 결합된 셈이다.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작업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관람객에게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착시효과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엠마 핵은 자신의 친구, 남동생의 아내 등 가장 가까운 사람을 모델로 세우기를 원한다. 작업 과정이 길고 고되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핵은 작업 과정에서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특별한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총 다섯 명의 모델과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강재현 전시팀장은 "작가에게 모델은 뮤즈나 다름없다. 가장 오래된 모델이 남동생의 와이프일 만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엠마 핵은 2005년 이후 10년 넘게 입체와 평면, 겉으로 드러난 그림과 숨은 대상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작년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렌티큘러 기법까지 도입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사진이 최소한 열두 장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도 열두 배로 든다. 그러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추구한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최근 컬렉션들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 섬세하고 세밀해졌다. 앞으로도 발전된 기법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윤화 인턴기자 yhlee@
이윤화 인턴기자 y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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