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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로드⑦]삼계탕은 결국 닭 맛…그 맛 온전히 품은 계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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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권성회·금보령, '혀'로 취재하다 - 예전 계삼탕은 이런 맛 아니었을까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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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서울의 유명 삼계탕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새삼 이 음식이 우리의 대표 보양식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뙤약볕이 내리쬐도 복날이면 기어이 삼계탕 한 그릇 먹어야 힘이 날 것만 같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삼계탕은 인기 메뉴다. 4000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강공원에 모여 먹었다니 이 사람들에겐 아마도 한국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삼계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의외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삼계탕을 먹어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닭이야 예로부터 선조들의 영양 공급원이었지만 여기에 인삼을 더해 끓이는 방식은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삼계탕, 언제부터 먹었을까= 고려사(高麗史)에는 1325년(충숙왕 12) "이제부터 닭, 돼지, 거위, 오리를 길러 빈제용(賓祭用, 손님을 모시거나 제사에 쓰이는 것)에 준비하거나 소, 말을 재살(宰殺)하는 자는 죄로 단정한다"는 금령(禁令)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닭을 다른 가축과 같이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닭백숙인 '연계증(軟鷄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삼계탕처럼 닭과 인삼을 함께 넣은 국물 요리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삼계탕과 비슷한 조리법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17년 발간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이다. 여기엔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뱃속에 찹쌀과 인삼가루를 넣은 뒤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 물을 붓고 끓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런 조리법을 알아도 당시 닭은 사위가 오면 대접할 정도로 귀한 재료였고, 인삼 역시 고가의 약재였기 때문에 이를 함께 끓여 먹는다는 것은 서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삼계탕이 대중적인 보양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인삼 생산량이 늘고 양계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라고 한다. 처음엔 닭백숙에 백삼가루를 넣은 '계삼탕'이라는 음식이 등장했다. 그러다 닭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지는 인삼의 영양을 앞세우면서 계삼탕은 삼계탕이 됐다. 가루가 아닌 인삼 한 뿌리를 통째로 넣는 조리법도 개발됐다.

◆삼계탕의 주연은 닭= 삼계탕에 주로 쓰이는 닭은 영계다. 육계를 30일간 키워낸 것을 주로 쓴다. 이 영계의 뱃속에 인삼, 찹쌀, 대추, 마늘 등을 채워놓고 국물과 함께 끓여낸다. 인삼은 성질이 뜨거워 말 그대로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게 한다. 또한 사포닌 함유가 높아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대추는 비타민C가 많아 피로회복에 좋다. 한때 삼계탕 속 대추가 닭의 나쁜 성분을 흡수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추는 오히려 소화기능을 돕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삼계탕 속에 들어간 마늘은 항암 효과가 있고, 황기는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은행은 폐를 보호해 호흡기 질환에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닭이다. 닭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데 이는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게다가 탕으로 끓여 치킨 등과 달리 소화가 잘 된다. 부재료에 가리지 않고 닭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조리하는 게 제대로 된 보양식인 셈이다. 맛칼럼리스트 황교익도 그의 책 '미각의 제국'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흔히 삼계탕이라고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의 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고 썼다.

◆방해받지 않는 국물, 맛의 중심= 말복을 며칠 앞둔 12일, 이 음식 맛의 중심을 보기 위해 서울 용산구의 한 삼계탕 전문점을 찾았다. 특별한 주문 필요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삼계탕 세 그릇이 나왔다. 가을에는 닭볶음탕도 하지만 여름에는 오직 삼계탕만을 하기에 주방에서 미리 끓이고 있다 손님이 오면 바로 낸다고 했다.

고명으로 파와 해바라기씨를 얹은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 숟가락 떠 국물을 입에 넣으니 파는 시원한 맛을 더했고 해바라기씨는 고소하게 씹혔다. 찹쌀 품고 있는 닭을 먹기 전 맛본 국물은 다른 재료에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닭의 맛을 품고 있었다. 견과류나 곡물을 갈아 넣은 걸쭉한 국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다른 집들에 비해 언뜻 좀 싱겁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계속 먹다보니 닭 본연의 맛이 강하게 다가왔다. 닭고기의 맛은 부드러웠고 국물과 잘 어울렸다. 1960년대 먹었던 계삼탕은 이런 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권성회 기자 street@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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