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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로드③]가을 대명사 미꾸라지…여름에 맛봐도 '최고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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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정동훈, '혀'로 취재하다 - 술 생각 절로 나는 보양식 서울식 추탕

서울식 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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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는 가을이 제철이었다. 한자를 뜯어봐도 고기어(魚)에 가을추(秋)를 더해 미꾸라지추(鰍)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꾸라지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산란기인데 이때 먹이를 많이 먹어 가을이면 살이 올랐다. 게다가 겨울잠을 자기 전 몸에 충분한 영양을 비축했다. 미꾸라지가 늦여름부터 제맛을 내기 시작해 가을철 가장 맛이 좋은 것은 이런 습성과 관계 있었다.

하지만 양식이 되면서 미꾸라지는 추어라는 이름 무색하게 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특히 그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미꾸라지를 푹 끓인 추어탕은 여름철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으로 대접 받고 있다.

◆존경 담은 미꾸라지 = 우리나라 관련 문헌에 처음 미꾸라지가 등장한 것은 고려 말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지만 이전부터 먹어왔으리라 추측된다. 논이나 강에서 흔하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늦여름 논에서 물을 빼기 위해 골을 내는 작업을 하면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미꾸라지로 국을 끓여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상치마당'이라고 했다. 상치(尙齒)는 노인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미꾸라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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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에 존경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 효능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맛은 달고 성질이 따뜻할 뿐 아니라 독이 없어 비위의 기능을 보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소개돼 있다.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도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양기에도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고 언급했다. 성분을 봐도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 등의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다. 여름을 나기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만 살찔 걱정은 제쳐 둘 수 있었다.

◆서민들의 음식, 거지 추어탕? = 미끈거리고 기다란 미꾸라지를 통째 넣어 탕으로 끓여 먹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조선시대에는 하천가에 사는 못생긴 물고기로 천대받기도 했다고 한다. 청계천 거지들이 끓인 추어탕이 유명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추어탕에는 그 외양보다는 영양과 맛을 더 중히 여겼던 서민의 정서가 서려 있었던 셈이다.

조리 방식 역시 오랜 세월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지금 성업 중인 방식만 봐도 미꾸라지를 갈고 된장을 쓰는 남원식과 미꾸라지를 통째 넣고 고추장으로 맛을 낸 원주식이 다소 차이가 있다. 배추와 간 추어를 넉넉하게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경상도식도 있다. 여기에 서울 사람조차 낯선 서울식 추어탕도 있는데 소고기로 육수를 내 얼큰하게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유부, 두부, 버섯 등도 함께 넣어 맛을 더했다고 한다. 폭염이 계속되는 8월의 첫 날, 서울식 추어탕을 경험하기 위해 중구 다동을 찾았다.

미꾸라지가 통째 들어간 추탕

미꾸라지가 통째 들어간 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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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식, 원주식은 아는데 서울식 '추탕'? = 추어탕은 1950년대만 해도 서울식이 주류였다고 한다. '추탕'이라고 했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였다. 다동의 추탕집은 이제 몇 남지 않은 서울식 추탕의 명맥을 잇는 곳 중 하나로 1932년 영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84년의 역사를 쌓아오고 있는 셈이다. 요리사 박찬일은 노포 기행을 엮은 '백년식당'이라는 책에서 이 집에 대해 "현대사의 고단한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집이다. 이곳이 식당은 밥 먹는 집이라는 전통적 통념과 달리 현대사에서 늘 거론되는 건 이유가 있다. 해방 전부터 민족 지사와 문사,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고, 해방 후에는 야당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남북 회담에서 북측 인사가 이 식당의 안부를 물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소개돼 있다.
과연 그 맛은 어떨까.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인 11시 40분께 가게에 들어섰다. 오랜 역사를 생각하면 소박하다고 할 만큼 넓지 않은 가게는 이미 몇 테이블을 제외하곤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채 10분도 안 돼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주문을 할 때 미꾸라지를 통째 넣을 것인지 아니면 갈아서 넣을 것인지를 물었다. 본래 방식이라는 '통째'를 주문했다.

곧이어 받아 든 뚝배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고춧가루 양념을 한 빨간 국물에 뜬 유부. 추어탕에 유부라니 다소 생경했지만 휘 저어보니 통째 든 추어가 떠올랐다. 넉넉하게 준비된 파를 넣고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니 육개장과 비슷한 대중적인 맛이 들어왔다. 단맛이 남을까 우려해 유부를 먼저 건져 먹었는데 제법 국물과 잘 어울렸고 두부, 버섯 등 여느 추어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건지들도 이 한 그릇의 추탕 맛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이윽고 통째 가라앉아 있던 추어를 집어 드니 10㎝는 돼 보였다. 이 정도 크기의 추어가 꽤 여러 마리 들어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입에 넣으니 국물을 머금은 담백한 살이 먼저 들어왔고 뼈도 거부감 없이 고소하게 씹혔다. 목 넘김도 부담이 없었다.

다동의 서울식 추탕

다동의 서울식 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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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탕 한 그릇에는 다양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소고기 육수의 시원함과 미꾸라지의 고소함, 얼큰한 국물을 머금은 국수, 제피가루의 매콤하고 톡 쏘는 향까지.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은 '미각의 제국'에 "추어탕이 옛맛이 아닌 것은 재료의 변화 탓만은 아니다. 미꾸리든 미꾸라지든 주재료는 조금만 넣고 여기에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해 콩가루며 들깨가루를 잔뜩 넣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이 집의 추탕에서는 이렇게 변하지 않은 온전한 한 그릇의 추어탕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집의 단골이었다는 수주 변영로는 자신의 음주 기행을 담은 '명정 40년'에 괜찮은 해정(해장)주점으로 서울식 추탕집 '황보추탕'을 소개했다. 과연 그의 혜안대로 서울식 추탕은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서둘러 일어서면서 보양은 점심에 했으니 늦은 시간 한 잔 마시기 위해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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