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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택배②]귀에는 이어폰, 하루14km 걷는 70세 '지하철 퀵맨'

최종수정 2018.02.06 10:10 기사입력 2016.07.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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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 분수대서 주먹밥 요기…"발로 뛰는 정직한 일, 불쌍하게 보진 마"

그림=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지하철 택배원의 하루는 고단하다. 걷는 게 일이고 나르는 게 돈이 된다. 하루 3~4건의 주문을 처리하면 2만 걸음(약 14㎞)을 걷는다. 하지만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에 앉아 쉴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다. 이동이 편한 지하철 환승역에서 택배원들은 기대어 쉴 곳을 찾는다.

신도림역 3번 출구에 있는 무료카페 '동네북'과 맞은편 분수대는 대표적인 택배원들의 쉼터다. 카페 동네북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소통공간이다. 기증받은 도서가 비치돼 있고 영화도 무료로 상영한다. 택배원들은 이곳의 널따란 테이블에 앉아 신문이나 책을 보며 주문을 기다린다. 맞은편 분수대는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이나 편의점에서 산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택배원들이 많다. 신도림역은 주문이 많은 지하철 1·2호선 환승역이라 이동이 쉽고 앉아 쉴 곳도 있다.
오후 1시30분 신도림역 분수대. 이곳에 걸터앉은 지하철 택배원 김성식(70) 씨와 만났다. 그는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택배원이 됐다. 택배로 번 돈은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데 쓴다.

김 씨는 분수대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오전에 서류 두 개를 전달하고 화분 배송도 했다는 그는 주먹밥이 든 밀폐용기를 꺼냈다. 가방에서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뚜껑을 신통치 않게 닫았는지, 배송 시간에 쫓겨 뛰는 도중에 열렸는지 알 수 없단다.

신도림역 3번 출구 분수대

"(지하철 택배는)적게 벌고 돈 많이 쓰는 일이지. 주로 먹는 데 쓰지. 종로, 안국에 가면 노인들 싸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나 1000원에 배식해 주는 데도 있는데 우리한테는 그림의 떡이지. 대기할 때 지하철 주변에서만 밥을 먹으니까. 편의점 들어가면 돈이야. 그래서 만날 이렇게 도시락 들고 다녀."
"끼니로 양이 적지는 않으세요?"

"허기 때우기에는 넉넉해. 편의점에서 1~200원이 아쉬워 배곯는 것 보다 낫지."

요란한 분수 소리에 묻힌 가운데서, 김씨는 묵묵히 주먹밥을 들었다.

지하철 2·3호선이 교차하는 교대역에도 '간이 정거장'이 있다. 환승통로에 있는 '작은물결 공유서가'. 한국방정환재단과 서울메트로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이곳도 기증 도서를 볼 수 있게끔 만든 공간이다. 원형 테이블에 등을 기대고 앉은 노인들이 많다. 역시 대화는 없다. 이곳에서 만난 신모(73) 씨는 최근에 주문이 줄어 이곳에 자주 머무른다고 했다. 기자라는 말에 그는 시큰둥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교대역 2·3호선 환승통로 '작은물결 공유서가'

"기자양반, 우리 같은 노인네 얘기 써서 뭐하려고. 우리도 다 같이 사회생활하고 사는 거요. 돈 적게 번다고 불쌍하고 그런 것도 아니야. 그쪽도 똑같이 늙어."

신씨는 40년 가까이 한 중학교에서 행정업무를 했다. 퇴직 후 쉬다가 2년 전 지하철 택배 일을 시작했다. 용돈벌이도 필요했지만 일하지 않으니 몸이 근질거렸다고 했다.

그는 지하철택배 일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신씨는 "이것만큼 정직한 일도 없다. 물건 받고 전달하고 약속시간도 있다. 발로 뛰어서 버는 돈이다. 어떤 사람들처럼 뒷돈을 받는 일도 아니다.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라고 했다. 신씨는 스마트폰 조작에 능숙했다. 얘기를 마치고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귀에 척 꼽았다.

강남역에도 택배원들이 자주 찾는 곳이 있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허브플라자'다. 강남역 8번 출구 부근에 있다. 또 다른 택배원 하영일(69) 씨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하씨는 손자 용돈을 마련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오전에 강남역 오면 여기서 쉬죠. 점심만 지나면 학생들이 많이 와서 피해요. 노인 택배기사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나요. 지하철 개찰구 통과야 자유롭죠"

교대역서 여의도로 공증 서류를 전달하라는 주문을 받고 하씨는 서둘러 일어섰다. 함께 개찰구를 통과했다. 운임 0원. 하씨는 "내가 아직 서비스할 수 있는 게 이거네요. 두 다리랑"이라고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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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수습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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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수습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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