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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베이커의 굴곡진 인생, 영원한 청춘찬가

최종수정 2016.06.10 10:44 기사입력 2016.06.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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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영화 '본 투 비 블루'...굵직한 사건에 상상 채워 감동 극대화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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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무라카미 하루키(67)는 소설가가 되기 전 재즈 클럽을 운영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시부야 센다가야역 근처에 있는 건물의 2층을 빌렸다. 재즈를 틀어놓고 낮에는 커피, 밤에는 술을 팔았다. 음식 맛이 좋아서 수입은 짭짤했다. 주말에 라이브 연주가 있어 단골손님도 많았다. 쳇 베이커의 음악도 흘렀을 것이다. 1997년 출간한 재즈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가장 먼저 언급했으니.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을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듯 빨아들이고, 다시 숨을 내쉬듯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커는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등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다. '마이 퍼니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은 재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탠더드 명곡. 흐느적거리는 듯한 음색과 서정적 멜로디로 대중의 마음을 빼앗았다. 얼굴도 잘 생겨서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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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이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고독과 굴곡으로 얼룩진 사생활. 금관악기 연주자인데도 헤비 스모커였고, 평생을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했다. 동료 연주자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쓰러지자 겁에 질려 그 자리를 피했고, 마약을 구하려고 부인으로 하여금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게 했다. 자식에게는 옷 살 돈 한 푼 건네지 않았다. 199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베이커는 1968년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치아가 거의 다 부러졌다. 그래도 트럼펫을 연주했다. 로버트 뷔드로 감독(42)의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이 시기를 조명한다. 전기영화가 아니다. 굵직한 사건만 빌리고 나머지는 허구로 채웠다. 베이커(이선 호크)는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사랑하면서 헤로인을 멀리 한다. 트럼펫에 매달려 다시 무대에 선다. 실제로 그는 도장공,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폭력과 마약 사건에 자주 연루됐다. 여성 드러머와 불륜도 저질렀다.
뷔드로 감독은 "상상 속의 베이커를 그렸다"고 했다. 이유는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커가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 없이 어둠에 삼켜져버리고 말았다." 베이커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혼을 뒤흔든다. 영화 속 제인과 매니저 딕(칼럼 키스 레니)도 이 때문에 베이커의 곁을 맴돌 것이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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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블루의 힘은 이를 부각하는 허구에서 나온다. 제인과의 사랑과 재기를 향한 몸부림을 서정적으로 그린다. 제인은 베이커에게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사랑할 때의 감정 상태가 인간의 보통 상태다.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사랑할 때 드러난다." 그녀가 꿈꾸는 희망의 원천은 인간과 근로에 대한 애정이다. 영화에서는 파랑으로 표현된다. 이 색깔의 셔츠를 입었을 때 사랑을 얻고, 재기의 희망을 얻는다. 행복을 누릴 때도 주위는 파랗다. 고향의 드넓은 들판에 쌓인 눈이 석양에 반사돼 바닷물과 같은 청명한 기운을 내는 장면이 압권이다.

파랑은 베이커의 비극적 삶도 대변한다. 다시 선 무대에서 얼굴이 핀 라이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파란 어둠에 묻힌다. 피카소가 1903년에 발표한 '기타 치는 눈먼 노인'을 보는 듯하다. 푸른 배경에서 삶의 근원적 고통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뼈마디가 연주를 못할 만큼 앙상한 노인은 그래도 기타를 신체의 일부분처럼 안고 있다. 시대의 편린을 탐식해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에 그대로 뿌리고도 살아남은 베이커처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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