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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아내에 자녀 보내라”···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따른 첫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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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집행 불구 아직 아이들 목소리도 못 들어···제도 보완 목소리도

#. “의식이 회복된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야한다. 나흘 뒤 일본에 데려다 주겠다”
작년 7월 말. 남편이 데려간 10살, 8살 두 아이의 목소리를 아이 엄마가 들은 것은 그날까지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23단독 이현경 판사는 재일교포 3세 아내 A(39)씨가 한국인 남편 B(41)씨를 상대로 아동반환을 청구한 심판에서 “두 자녀를 엄마에게 돌려보내라”고 이달 2일 결정했다. ‘국제적 아동탈취의 민사적 측면에 관한 협약(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이하 헤이그협약)’에 따른 한국 법원의 첫 결정이다.
헤이그협약은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부모 일방이 무단으로 데려간 16세 미만 아동(탈취아동)을 보호하고 신속히 양육권자에게 되돌릴 수 있도록 맺은 국제협약이다. 1980년 만들어져 미국·영국 등 93개국이 가입했고, 한국도 지난 2012년 12월 89번째로 가입하며 협약 이행을 위해 헤이그아동탈취법을 마련했다.

A씨 부부는 2005년 일본에서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관계가 소원해지며 2013년께 별거에 들어갔고 결국 이듬해 이혼을 협의하며 A씨가 친권을 행사하기로 했으나 절차적으로 매듭짓진 않았다. 그러던 차 B씨가 지난해 여름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간 뒤 일방적으로 A씨와 연락을 끊고, 자신의 주소지에 아이들 전입신고까지 했다. A씨는 헤이그협약에 근거해 작년 9월 가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판사는 “A씨가 자녀의 실질적 양육자로 보인다. 약정을 어겨 무단으로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남편은 헤이그협약에 따른 A씨의 양육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 결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아이들이 엄마 보호 아래 있을 수 있도록 가집행도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 A씨 측에 따르면 아이들은 아직 엄마를 보기는커녕 목소리조차 주고받지 못했다. 자녀들을 국내에 둘지, 일본으로 돌려보낼지 판가름하는 재판부조차 절차 진행 과정에서 이 부부의 아이들을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국내 제도가 협약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법령은 법원이 아동반환이 청구된 지 6주가 지나도록 결정을 내지 못하면 서면으로 청구인 측에 지연이유를 알리도록 하는 등 탈취아동의 신속한 반환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A씨의 경우 청구한 지 다섯 달 만에야 법원 결정이 나왔고, 그 과정에서 당국 조력도 충분치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작년 말까지도 자신의 아이들이 국내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작년 6월 일본 당국과 직접 만나 협약 이행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홍보한 법무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법무부는 아동의 소재발견 및 관련 법률 정보 제공 등 협약 이행에 관한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중앙당국으로 지정돼 있다.

아동반환 결정이 확정되더라도 B씨가 아이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과태료·감치 처분 외에 아이들을 데려오거나 만날 수 있도록 강제할 근거도 마땅찮다. 더욱이 B씨는 이번 법원 결정에 불복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져 절차는 더 길어질 전망이다.

학계에선 한국보다 1년 늦게 협약에 가입해 관련법을 마련한 일본이 6장 153개 조문을 둔 데 반해 4장 17개 조문에 그치는 우리 제도가 촘촘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도 자체가 부모의 갈등이 가족 간 생이별로 이어지는 문제를 다루는 만큼 자발적이고 우호적인 해결을 권하고 있긴 하지만, 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제출된 개정안은 전무해 개선 노력도 미비하다.

협약이 미치는 범위의 한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헤이그협약은 자녀가 살던 나라와 현재 있는 나라가 모두 협약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우리 주요 국제결혼 상대국인 중국·베트남·캄보디아 등은 이 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다. 사법부도 국제결혼 및 이혼 통계는 매달 집계하지만, 협약 이행에 따른 아동반환 통계는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A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협약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사건처럼 다뤄진다면 아동의 신속한 보호라는 취지가 실현되기 어렵다”면서 “조속히 미비점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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