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청년실업자 39만7000명…취준생 더하면 108만명
취업 못하고 졸업 뒤 전문대 입학
노동시장 주축은 40대 중장년으로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8시 집을 나선다. 강남에 있는 토익학원은 집에서 버스로 30분, 걸어서 10분 거리다. 9시부터 2시간 동안 토익 스터디를 한다. 연이어 2시간 토익 강의를 들으면 오후 1시다. 이틀은 오후 3시~6시 금융 스터디를 하고 있다. 매일 한 시간은 재무설계자격증(AFPK)을 따기 위해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다. 과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7시. 토익 숙제, 자격증 공부를 더하면 9시가 훌쩍 넘는다.
청년 백수(白手)시대다. 요즘말로 하면 '청백전', 청년백수 전성시대다. 과거 백수는 게으름의 결과로 잉여인간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끝도 없이 스펙을 쌓아도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쉽지 않다.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무한 경쟁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만 15~29세) 실업자는 39만7000명에 달했다. 4주간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40만명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체감실업률, 즉 취업준비생까지 합치면 108만명으로 늘어난다. 이를 반영한 체감실업률은 22%로 집계됐다.
휴학과 졸업유예는 이제 필수가 됐다. 4학년 2학기에 접어든 김씨 역시 한 과목은 남겨두고 수강 신청을 했다. 졸업자 신분 보다 졸업 예정 상태일 때 인턴 등의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학점을 채우고도 졸업을 미룬 취준생은 지난해 2만5000명에 달했다. 혜택을 누리는 건 대학들이다. 대학이 이들에게 받는 수강료가 한 해 총 56억원에 달한다.
'청년 백수시대'는 졸업식 풍경도 바꿨다. 졸업 후에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학생이 늘면서 시끌벅적한 졸업식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졸업사진을 찍지 않는 경우가 늘었고 졸업식장엔 빈자리가 속출하고 있다. 찾아가지 않는 졸업장도 학과 사무실에 쌓여가고 있다. 1년 반 넘게 졸업을 유예하다 최근 졸업한 최아름(27ㆍ가명)씨는 "부모님을 불러 학사모를 씌워드리며 사진을 찍던 풍경은 옛날 얘기"라며 "졸업은 동시에 백수가 된다는 얘기일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박주영(31ㆍ가명)씨는 1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봉사활동, 기업 아르바이트 등 스펙쌓기에 몰두했고 졸업 후에는 인턴, 계약직을 반복했지만 정규직행은 요원했다. 김씨는 "하루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다 진짜 버려야할건 나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잠시 쉬려고 텔레비전을 봐도 답답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하소연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시 학교로 유턴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지방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미영(29ㆍ가명)씨는 최근 2년제 전문대에 다시 입학했다. 졸업 후 2년 간 취업을 준비했지만 '지방대, 인문학과'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의 꿈도 보류됐다.
대학을 유턴하는 사람이 늘며 취업 나이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주축은 이미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으로 이동했다. 근로자 평균 나이는 1999년 처음 40대에 접어든 이후 높아지고 있다. 고령층 근로자가 늘었지만 청년 고용은 정체되고 있다. 김씨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까지 한 친구들을 보면 나는 지금껏 뭐했나 자괴감이 든다. 벼랑끝에 내몰린 기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