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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조선 선비 임형수

최종수정 2014.12.17 11:27 기사입력 2014.12.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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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릴 때면 가끔,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로 눈이 흩어져 날리는 가운데 불 앞에 앉은 조선시대 선비 임형수(1504~1547)를 그린다.

"눈이 산중에 가득히 쌓인 때 백근강궁(百斤强弓)을 말에 메고 천금보도(千金寶刀)를 허리에 차고 철준마(鐵駿馬)를 집어타고 산골로 달려들어갈 제 앞에서 큰 돗이 튀어나와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함부로 뛰는 것을 대살에 쏘아 누이고 말께서 나려와서 칼로 참나무를 비혀 젖혀 화톳불을 놓고 긴 꼬창이로 돗고기를 구어 가며 술을 마시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뒤에 얼굴을 치어들면, 어느 동안 눈이 시작하야 면화 같은 눈송이가 술 취한 얼굴에 선득선득 떨어지는 맛이라니."

임형수가 벗 퇴계 이황(1501~1570)에게 "자네가 사나이 대장부의 행사를 알겠나"라며 들려준 말이다. 행사는 행동이나 하는 짓을 뜻한다. 돗은 돼지의 옛말이다.

퇴계는 임형수와 기질이나 취미가 달랐지만 그를 유난히 가까이했고 그와의 교분이 두터웠다. 퇴계는 임형수 생전에 매양 그를 기남자(奇男子)라고 칭찬했다. 기남자는 재주와 슬기가 남달리 뛰어난 남자를 가리킨다.

임형수는 외모가 준수(俊秀)하고 풍의(風儀)가 멋졌으며 언행이 활달하고 기개를 숭상했다. 자잘한 관습이나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시원스럽게 행동했다. 식견이 뛰어나고 담론이 비범하고 참신했으며 해학에도 능해 남들로 하여금 솔깃해 귀 기울여 듣게 했다. 또 궁마(弓馬)에도 솜씨가 있어서 재능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임형수는 어떤 일로 시험을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 없어 당시 사람들은 그를 나라의 큰 일을 맡길 만한 인물로 높이 받들어 귀하게 여겼다.
정조 때 편찬된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전해진 선비 임형수의 모습이다. 국조인물고는 조선 건국에서부터 숙종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 2065명의 전기를 편집한 책이다.

임형수와 퇴계는 넓게 보면 임꺽정(?~1562)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여러 차례 벼슬 권유를 뿌리치고 학문에 정진한 남명 조식(1501~1572)도 이 시대를 살았다. 당시 정치는 사화(士禍)의 피로 물들었고 지방에는 도적이 들끓었다. 임형수는 누명을 쓰고 정미사화에 희생된다.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을 읽으며 그 시대를 산 선비 임형수의 기상을 함께 보기에 좋은 긴 겨울밤이 많이 남았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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