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침 잡수셨습니까,라는 말이 인사이던 기억이 난다. 아침이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침밥과 동일시되던 그 질문에는 식사를 거르는 일을 밥먹듯 하던 날들의, 주린 기분이 숨어있다. 춘궁기는 다른 궁함이 아니라, 밥이 궁하던 때였다. 주려서 허옇게 뜬 얼굴들이 산 송장처럼 오월 햇살에 졸고있던 기나긴 대낮이 있었다. 소나무 껍질이나 오디 따위를 먹으며 버텼던 그 날들에는, 뜬 눈에도 헛것처럼 밥이 허옇게 스물거렸으리라. 이팝꽃, 조팝꽃 이름이 그렇게 불려진 건 허기에 찬 호명이었다.
이제 밥은 소화기관을 흐뭇하게 하는 것들 중에서 오랫 동안 누려왔던 주인공 자리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줄어든 밥그릇은 그것을 함의한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잖아? 옛날 귀하게 자란 자식들이 식량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는 얘길 듣고 혀를 차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 말이 그리 얄궂지 않게 들리니 나도 변하긴 변했나 보다. 요즘 나는, 그 작아진 그릇 가운데서도 한 숟가락 씩을 더 더는 습관이 생겼다. 슬슬 시작되는 비만을 줄여보려는 심산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 또한 앞으로의 밥그릇 크기를 더욱 줄이는 흐름에 역성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배고픔을 잊어버린 시절, 밥이 귀한 것을 모르는 시절, 밥그릇이 옛날 간장종지처럼 작아지고 있는 시절. 이 풍요는 우릴 행복하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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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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