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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밥그릇에 관한 명상(217)

최종수정 2014.11.16 08:07 기사입력 2014.11.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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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인, 1942년과 비교하여 밥그릇 크기가 3분의 1로 줄었다는 기사가 났다. 그릇이 줄었다고 해서 식사량 자체가 줄어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밥을 적게 먹을 뿐이리라. 다른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밥을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릇 하나의 역사만 들여다 봐도, 삶의 양상과 욕망의 시프트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 아침 잡수셨습니까,라는 말이 인사이던 기억이 난다. 아침이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침밥과 동일시되던 그 질문에는 식사를 거르는 일을 밥먹듯 하던 날들의, 주린 기분이 숨어있다. 춘궁기는 다른 궁함이 아니라, 밥이 궁하던 때였다. 주려서 허옇게 뜬 얼굴들이 산 송장처럼 오월 햇살에 졸고있던 기나긴 대낮이 있었다. 소나무 껍질이나 오디 따위를 먹으며 버텼던 그 날들에는, 뜬 눈에도 헛것처럼 밥이 허옇게 스물거렸으리라. 이팝꽃, 조팝꽃 이름이 그렇게 불려진 건 허기에 찬 호명이었다.

밥그릇 위로 봉긋하게 올려담은 밥을 고봉밥이라 그랬다. 정말 지금의 세 배는 되는 큰 그릇에 밥을 가득 담은 것으로도 모자라 무덤처럼 쌓고는, 밥심으로 일하는 거지,라며 푼푼한 정을 덩달아 퍼담던 인심이 있었다. 여인들은 가뜩이나 적은 제 밥을 덜어, 일터로 나가는 사내의 그릇에 눌러 담았다. 밥은 마음이었고 안정감이었고 생명이었고 삶 그 전부였다. 밥술 끝에 정이 비기도 했다. 누구는 더운 밥 누구는 찬 밥을 주느냐고 서러워하기도 했고 굶어죽을 양반이 찬 밥 더운 밥 가리게 생겼느냐고 타박을 받기도 했다.

이제 밥은 소화기관을 흐뭇하게 하는 것들 중에서 오랫 동안 누려왔던 주인공 자리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줄어든 밥그릇은 그것을 함의한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잖아? 옛날 귀하게 자란 자식들이 식량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는 얘길 듣고 혀를 차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 말이 그리 얄궂지 않게 들리니 나도 변하긴 변했나 보다. 요즘 나는, 그 작아진 그릇 가운데서도 한 숟가락 씩을 더 더는 습관이 생겼다. 슬슬 시작되는 비만을 줄여보려는 심산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 또한 앞으로의 밥그릇 크기를 더욱 줄이는 흐름에 역성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배고픔을 잊어버린 시절, 밥이 귀한 것을 모르는 시절, 밥그릇이 옛날 간장종지처럼 작아지고 있는 시절. 이 풍요는 우릴 행복하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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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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