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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운동선수에게 언어도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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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오른쪽)이 신태용 코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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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 승리로 끝난 지난 10일 파라과이와 친선 A매치를 앞뒤로 글쓴이는 몇 차례 고개를 갸웃했다. 독일인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독일어를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글쓴이의 아주 짧은 실력으로도 분명히 독일어가 아니었다.

그때 문득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결정되고 얼마 뒤 대한축구협회에서 스페인어 통역을 공모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기사 내용에는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스페인어-한국어 통역을 전담하고 수행비서 임무를 담당할 직원을 채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파라과이와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 배석한 직원은 이 공모의 합격자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3일 대한축구협회 페이스북 계정에서 진행된 팬들과 질의응답에서 자신이 독일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다고 소개했다. 모국어인 독일어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오랜 클럽 생활을 해 스페인어가 자신 있다고 밝혔다. 또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를 잘한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면 동시통역사 수준이다. 이어 “선수들과 소통이 중요하다. 독일어를 하는 선수들과 대화하며 정기적으로 한국어를 배워 익히겠다”고 말했다. 독일어로 얘기하면 손흥민, 영어로 소통하면 주장 기성용 등이 불편 없이 슈틸리케 감독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터이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고 1960년대 후반 에카르트 크라우츤 청소년 대표팀 코치, 1990년대 초반 데트마르 크라머 올림픽 대표팀 감독 이후 오랜만에 독일인 지도자가 대표팀을 맡게 돼 독일과 독일어가 다시 한국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가운데)이 코치, 선수들을 모아놓고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가운데)이 코치, 선수들을 모아놓고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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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독일어 실력은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1987년 독일 에센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등 외국 취재 과정에서 몇 차례 요긴하게 써먹은 적이 있다.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말하는 수준이었지만 독일 유도 관계자의 딸에게 "Du bist eine schone fraulein(너, 예쁜 소녀구나)"라고 말을 걸어 취재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US 여자 오픈 등에서 우승컵에 잇따라 키스하며 시름에 잠겨 있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물한 박세리는 미국 중계진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 보는 이들에게 ‘장하다, 박세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일본프로축구 J리그 1호인 노정윤은 1993년 산프레체에서 뛰면서 수훈선수 인터뷰 때 일본어를 사용해 연고지인 히로시마 팬들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국내 리그에서 활동하는 여러 종목의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선수에게 호감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운동선수들은 현역 때보다 오히려 은퇴한 뒤 외국어가 더 필요하다. 글쓴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둔 그해 2월 거스 히딩크 감독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신문선 허정무 해설위원과 함께 진행한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통역은 네덜란드 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이 맡았다. 그런데 이 외교관의 네덜란드어 실력은 발휘될 기회가 없었다. 히딩크 감독이 “왜 베스트 11을 아직도 결정하지 않고 있느냐”는 등 다소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영어로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에게 영어는 지도력 외에 전 세계 나라와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확실한 자산이다. 홍명보 감독 후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영어 구사 여부가 선정 기준 가운데 하나였다는 걸 모든 종목의 현역 운동선수들은 눈여겨봐야겠다.
왼쪽부터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박지성, 거스 히딩크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왼쪽부터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박지성, 거스 히딩크 감독[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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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들의 외국어 실력과 관련해 소개할 경기인 출신 체육 행정가가 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의 김나미 사무총장이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한국 스포츠를 이끄는 3대 축 가운데 하나인데 2012년 체육 관련 단체로는 처음으로 여성을 실무 최고 책임자로 선임했다. 스키 국가대표 출신이자 현직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인 김나미 총장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독일어를 쓰는 나라인 오스트리아 유학파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 등 독일어를 주로 쓰는 겨울철 종목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독일어를 구사하는 손흥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기성용이 한국의 두 번째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각각 독일어와 영어를 쓰는 나라의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을 상대로 협조를 부탁하는 장면을 먼 뒷날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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